"망년회 하려면 별 수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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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처음 접근할 때는 겁도 나지만 막상 하고 나면 기분도 괜찮고 친구들한테 자랑도 할 수 있어요.』
『사람 해치지 않고 돈 터는 일은 걸리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나 많은데요.』
21일 오전 서울 신정경찰서 형사계에 여학생 1명이 낀 고교생 11명이 특수강도 혐의로 붙들려 왔다.
펑크머리에 말쑥한 검정색 코트, 반짝거리는 구두.
학생들은 전날 밤 「닭장」(디스코클럽)에서 한바탕 논 뒤 「겨울방학 파티」를 하기 위해 친구의 자취방에 양주와 소주 10여 병을 사들고 모였었다.
이들의 리더격인 강 모 군(l6) 등 2명은 『방이 너무 비좁다』『파티가 너무 초라하다』는 여론(?)에 『여관비를 벌어오겠으니 잠깐 기다려라』며 동네로 나가 새벽 귀가 중이던 박 모 씨(36·여·상업)를 주먹으로 머리를 때려 실신시킨 뒤 2만여 원이 든 핸드백을 빼앗아 달아나다 검문 경찰에 붙잡혔다.
『학교나 동네 친구들로부터 「퍽치기」「아리랑치기」로 용돈을 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망년회도 해야되는데 이 수밖에 더 있어요?』
고입연합고사를 치른 재수생 중학동창들을 위로하는 자리 마련을 위해 14일 처음「퍽치기」를 한 뒤 1주일동안 5차례나 이렇게 옷값·술값·여관비 등을 조달해왔다는 이들의 장난기조차 섞인 얼굴표정에서 죄의식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입시가 끝나고 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이 크리스마스·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자연스럽게(?) 저지르는 이 같은 범죄들은 어떻게 치유돼야 하는가. <전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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