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에 반체제 시인 「가리치」 선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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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물건을 사기 위한 긴 행렬부터 스탈린 강제수용소까지 소련사회의 여러 가지 악폐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앙골라의 시인 「알렉산드로·가리치」(1918∼1977)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이 모스크바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가리치」는 지난 4월 복권되었을 뿐 그의 시가 무대 위에서 불려진 것은 20년 만이다. 당국에 의해 2개월간 공연이 보류되는 등 곡절을 겪은 후의 일인데 「발라드시대」 부활을 예고하듯 50회의 롱런을 기록했다.
『…그리운 고루이마 땅에 구름이 흘러/20년이 하루같이 하늘만큼 흘러…』
무대에는 슬픈 발라드가 울리고 객석으로부터 말없는 탄식이 터진다. 『붙잡혀 20년, 얼음 밑에 갇혀서 지낸』 남자를 읊은 「가리치」의 대표작 『구름』의 한 구절이다. 고루이마란 북극의 땅에 있는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로, 스탈린 감옥이 무대 위에 펼쳐지고 노래 된 것은 60년대이래 처음이다.
「가리치」는 해빙시대에 활약한 영화와 연극작가로 시민들 사이에는 자작시에 단순한 멜로디를 붙여 기타를 튕기며 노래하던 「발라드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행렬 같은 일상적인 악, 후진적 사상교육, 공허한 정치 슬로건, 관료주의, 시민들의 권력에 대한 증오심까지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파헤쳐 한때 「가리치」를 좋아한다는 것은 반체제적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68년 「프라하의 봄」에 소련군의 침략을 비판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그는 71년 시민권을 박탈당했고 77년 망명지 파리에서 사고로 죽었다.
극단 「제3의 물결」이 최근 모스크바 프라우다 소 문화회관에서 공연한 「가리치」에 관한 극은 그의 시 제목을 딴 『내가 돌아갈 시간』으로 「가리치」의 발라드 약30편의 촌극과 함께 무대 위에 펼쳐진다. 극중에 소개되는 발라드의 3분의2가 「가리치」의 오리지널이다.
시는 현실의 에피소드를 얽은 것으로 소년시대부터 국외추방까지의 반생을 그렸다. 무대의 제1부는 스탈린 시대가 배경인데 거대한 행진과 슬로건으로 시작되어 수용소의 아점호, 백해운하의 건설, 부친을 유형지로 보낸 소녀의 모습 등으로 공포시대를 선명히 그리고 있다.
제2부는 주로 브레즈네프 시대를 취급했다. 『침묵은 금』을 연발하는 그로테스크한 합창,「가리치」를 희생케한 언론의 통제를 통렬히 파헤친다.
내용이 내용이니 만큼 작품이 공연되기까지는 곡절이 많았다. 연출을 맡은 「오렉 ·구도랴소프」씨(50)가 작품의 무대화에 착수한 것은 작품해금 1년 전인 작년 봄이다. 최초의 난관은 각본을 만드는데 필요한 텍스트를 입수하는 것이었다.
타이프로 친 시집과 낡은 해외의 해적판 녹음테이프를 모으는데 반년이 걸렸다. 각본이 끝났을 때, 다음은 공연할 극장의 선택이였다. 금년 2월 좌석 3백석의 문화회관에서 초연되자 당국의 공연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그 조치는 2개월 후 월간문예 지 『오크차브리 (십월)』가 「가리치」의 작품을 게재하면서 유야무야 되었다. 그후 객석은 40·50대의 「가리치」팬은 물론, 20대·중고교생까지 모여들여 지난 11월부터는 레닌그라드순회공연까지 하게되었다. 최근 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가리치」를 『예민한 천재적 시인』이라고 절찬하며 그의 복권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고 제2의 해빙기를 맞은 소련에 「발라드시대」에의 회귀 바람을 일으켰다. <박금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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