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모빌리티 서비스에 투자한 현대차…정작 한국선 돈 못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대자동차가 미국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에 전략 투자한다. 미국 공유경제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아시아ㆍ유럽ㆍ북미를 잇는 ‘모빌리티 비즈니스 벨트’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선 규제 등에 가로막혀 차량공유 사업을 키우지도, 투자하지도 못하고 있다.

모빌리티 서비스 정보 제공하는 #'미고'에 자동차 업체 최초로 투자 #유럽·동남아·호주서도 투자했지만 #한국에선 규제에 막혀 사실상 불가

현대차는 11일 ‘미고(Migo)’와 상호협력을 위한 전략적 투자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미고는 2016년 미국 시애틀에서 설립된 모빌리티 서비스 전문 업체다. 지난해엔 미국에서 처음으로 ‘모빌리티 다중통합’ 개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차량공유 관련 서비스를 선보였다.

미고 애플리케이션 실행화면. [사진 현대차]

미고 애플리케이션 실행화면. [사진 현대차]

서비스의 핵심은 다양한 공유서비스나 대중교통 중 사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서비스가 뭔지를 찾아 연결해 주는 것이다. 사용자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이동하고 싶은 목적지를 입력하면, 미고는 여러 공유서비스 및 대중교통의 가격과 소요시간 등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준다. 미국의 대표 카셰어링 서비스인 카2고(Car2Go)나 집카, 차량호출 서비스인 우버ㆍ리프트ㆍ만큼 택시뿐 아니라 라임바이크ㆍ스핀 같은 자전거 공유서비스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고, 버스ㆍ전철 등 대중교통 정보도 동시에 알 수 있다. 미고는 이 과정에서 고객이 선택한 업체로부터 일정한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낸다. 현재 뉴욕ㆍ로스앤젤레스ㆍ시카고 등 주요 75개 도시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번 투자를 통해 미국 모빌리티 사업 전반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하고, 관련 기술을 확보해 공유경제 시장에서의 역량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미국 모빌리티 시장 규모는 올해 460억 달러에서 2025년 2930억 달러, 2030년 458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서비스 초기에 투자가 이뤄진 데다 미고 투자 기업 중 자동차 업체는 현대차가 유일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영기(왼쪽) 현대차 인도 법인장이 인도 카셰어링 업체 '레브' 창업자들과 만난 모습. [사진 현대차]

구영기(왼쪽) 현대차 인도 법인장이 인도 카셰어링 업체 '레브' 창업자들과 만난 모습. [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앞서서도 여러 지역에서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에 투자하고, 직접 사업을 추진해 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아이오닉EV를 활용한 카셰어링 사업을 진행 중이고, 인도 카셰어링 업체 레브에도 투자했다. 또 아시아에선 한때 ‘동남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며 급성장한 차량호출 업체 그랩에, 호주에선 P2P 카셰어링 업체 카넥스트도어에 투자했다. 공유경제에 대한 관심이 적극적인 투자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앞서 인도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현대차를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 같은 투자는 향후 더 확대될 전망이다.

'미고' 로고.

'미고' 로고.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이 같은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규제와 기존 업계의 반발 때문이다. 현대차는 해외에서와 마찬가지로 차량공유사업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 카풀 스타트업 럭시에 5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현대차는 럭시와의 협력으로 차량공유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로봇택시나 무인 배달 차량 같은 혁신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불과 6개월 만에 엎어졌다. 택시 업계가 현대차 불매운동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압박했고, 규제를 개선하겠다던 정부는 업계의 눈치를 보며 카풀 업체들을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차는 럭시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국내 투자를 고려하던 해외기업도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 업체에 올 수도 있었던 대규모 투자금이 그랩이나 디디추싱 등으로 넘어간 것이다.

동남아시아 차량공유업체 '그랩'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 [사진 그랩]

동남아시아 차량공유업체 '그랩'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 [사진 그랩]

게다가 이런 상황은 현대차가 과감하게 차량공유 관련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어떤 시장에서도 앞서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시장을 테스트베드 삼아 사업 노하우를 습득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야 작은 업체든 현대차든 경쟁력이 높아질 텐데, 현재는 규제 때문에 이런 기회가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