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청산」과 벅찬 씨름으로 시종|13대 첫 정기국회 공과 따져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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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3대 첫 정기국회는「5공 청산」이라는 벅찬 과제와의 씨름으로 시종했다.
16년만에 부활된 국정감사는 전두환 일가의 권력남용, 전씨의 권위주의 체제를 악용한 정경유착이 도처에 만연해있었음을 들춰냈다. 뒤이은 5공·광주특위와 문공위의 청문회는 5공 출범과 그 이후 전과정을 경쟁적으로 파헤쳐 5공 청산을 국민적 과제로 만들어 버렸다.
특히 청문회의 TV직접중계로 정치가 안방으로까지 범람해 들어가「정치과잉현상」이 빚어졌고 그 바람에 예산심의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으며 그토록 개정이 시급하다고들 했던 정치성 법안·민생법안들도 끝내 내년으로 넘어가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의 정치적 기능은 크게 회복됐고 스타일과 내용에서도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현장감사 위주로 진행된 국정감사의 영향은 위력적이었다. 첫 번째 성과는 성역의 붕괴다.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군에 대한 현장감사가 실시돼 정보사와 보안사가 비공개일망정 감사를 받았고 수방사 등도 대상이 됐다. 안기부 현장감사는 성역축소의 한 상징이었다.
둘째 5공 비리는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민적 컨센서스를 만들어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전씨 일가의 비리가 전국적으로 저질러지고 정부기관이 권력과 결탁하거나 비호를 받은 권력 유착적인 비리로 얼룩졌음을 드러냈다. 전기환·이규동·이창석씨 등의 증언, 이순자씨의 새세대육영회 해명이 5공 비리에 대한 여론의 압력을 실증해 주었다.
셋째 5공의 정권 유지를 위한 권력 왜곡현상의 노출이다. 내무위의 김근태씨 고문사건의 재조명이나 문공위에서 허문도·이상재씨 등의 언론탄압 실상이 벗겨진 것도 그 일환이다. 장세동씨 등을 증인으로 내세운 5공 특위 일해 청문회의 TV생중계 효과는 충격적이었다.「청문회정치」라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내면서 국민을 정치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였다.
5공 특위는 4차례 7일간 청문회를 열어 장세동·안현태 두 전 청와대 경호실장 외에 정주영·정수창씨 등 재계인사, 김기환씨 등 일해 관계자 총 24명을 출석시켜 증언을 들었다.
또 5공 특위와 경쟁적으로 열린 광주특위도 3차례 6일간의 청문회에서 김대중 총재를 비롯해 신현확·정호용·정승화·주영복·이희성씨 등 13명을 증인으로 불러내 12·12에서 5·17계엄확대, 광주사태 등 5공 탄생과정을 추궁했다.
문공위의 언론청문회 역시 80년 언론통폐합·강제해직 사건을 다루면서 언론탄압의 주역 허문도·이상재씨 외에 이광표·이진희·이원홍 전 문공부장관 등 연인원 53명을 불러내 5·17세력의 언론장악 정책을 파헤쳤다.
3개 청문회는 1백명 가까운 증인·참고인의 증언을 통해 5공에 대한 광범하고 집요한 추궁을 벌여 결국 전두환씨 문제의 조속 처리 역량으로 나타나 급기야 전씨가 지난 11월 23일 모든 재산을 내놓고 백담사로 은둔하는 극적인 사태를 빚어냈다.
야당 측은 전씨의 국회출석증언과 비리수사를 요구하며 정부측의 전씨 문제 처리방식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지만 어떻든 5공 유산을 정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이뤄진 건 사실이다.
청문회·5공 유산·전씨 문제가 무대의 전면에 클로즈업되는 바람에 19조3천억 원 규모의 예산심의는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예산심의에서는 그 동안 손댈 엄두를 못 냈던 국방예산을 1천3백억 원 삭감하고 안기부 몫의 예비비, 새마을 출연금, 전경운영비, 학생 군사교육비 등 정치성예산을 상당히 삭감했다.
여당이 주장한 농가부채 탕감은 야당간에도 손발이 맞지 않았지만 2천억 원 규모의 경감혜택을 주는데는 합의가 이뤄졌으며 해직공무원 보상비도 9백65억 원이 책정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예산이 뒷전에 밀리듯 각광받지 못한 법률개선문체도 지지부진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경범죄처벌법 등 몇 개 법률만 개정됐을 뿐 국가보안법·안기부법· 사회안전법 등은 법률개폐특위에서 제대로 심의조차 되지 못했다.
야당이 조속한 개정을 약속했었던 노동관계법도 여야간의 이견만 드러내놓고 선거공약이던 한은법도 미뤄졌다.
이번 국회에서 가장 큰 쟁점의 하나로 예상됐던 지자제는 4당간의 미묘한 이해차이로 상정·심의조차 못했다.
특별시·직할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읍·면·동장까지 직선하자는 평민·민주당의 전면실시 주장도 속셈에서는 서로 다르고, 공화당은 광역자치단체부터, 민정당은 현행법대로 시·군·구 의회구성부터 하자는 생각인데 어느 당도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을 않고 있다..
지자제관계법 심의의 늑장 때문에 지자제실시는 아무래도 내년 하반기이후로 미뤄질 것 같다.
여야 모두 당장 주목받는 청문회에만 매달리다가 실질적인 법률개선이나 지자제문제를 늦추는 커다란 실책을 범한 꼴이 된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 10월에 마친 국정감사는 끝난지 2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감사보고서를 매듭지었는데 그나마 시정요구사항도 구체적인 것보다 정치성 요구와 주문이 많아 떠들썩하게 판만 벌인 꼴이 되고 말았다.
국회의 비 능률과 함께 눈앞의 인기나 이해에 매달리는 각 정당과 국회의원의 수준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이미 청문회에서 거칠고 기초 없는 행위로 TV중계 등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했으며 국회의 권위회복과 함께 지나친 권한오용이나 심지어는 비리의 소문도 없지 않았다. 세비85%인상의 발상이나 국정감사·특위운영에서의「추문」은 4당과 의원모두가 자계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될 부분인 것 같다.
이번 정기국회 과정 중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현상은 야당공조체제의 균열이다.
예산처리과정에서 농가부채문제로 이견을 보인 평민당이 반대토론을 하고 민정당이 찬성토론에 나서서 서로 반대입장을 보인 것이나 강영훈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에서 공화당이민정당에 동조하는 등「야대」내부에 틈새가 벌어지고 있음을 보였다.
이미 평민당은 앞으로 신임투표 등에서 독자행동을 취할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민주당도 보다 명확한 당의 노선을 드러내 보인다는 방침을 정했다. 앞으로 노사분규·이념·체제에 대한 갈등이 보다 뚜렷이 부각되는 사태가 전개된다면 야 3당내의 균열은 더욱 넓게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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