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명 한방서 취침·식사·용변 … “재소자, 가축 아닌 사람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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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교도소 실태보고서 ⑥ 

“그 안에 있는 것은 돌멩이나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다.” 일본 법무성은 새로운 교정시설을 설계할 때마다 이 문구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일본 형무소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엿보인다. 수용거실은 단순히 격리와 처벌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기본적인 주거 공간 조성이 설계의 중심이 된다. 독거실엔 최소 네 장의 다다미(疊)를 깐다. 혼거실 역시 수용인원 수보다 다다미 수가 많아 여유롭다.

백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교정·교화 집중할 수 없는 구조 #선진국선 개인공간 구분해 수용

한국의 교정시설도 ‘정상 환경 (normal environment)’ 구현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 한국의 교정시설은 열악한 데다 과밀 상태다. 과밀이 아니어도 5~12명이 한방을 쓰는 게 기본이다. 비좁은 방에선 취침, 식사, 식기 세척, 용변, 샤워, 세탁물 건조, TV 시청, 독서 등이 모두 이뤄진다.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담아내기도 힘든 면적에 10여 명이 이 모든 일을 촌각을 다투어가며 지낸다. 미국과 영국에선 수용거실에 ‘데이룸’이라는 공유 공간을 만들어 개인공간을 구분한다.

교정 시설은 작아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1000여 명이 넘어가는 대형시설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500여 명 단위로 묶어내야 계호 및 사회복귀 프로그램 등을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교도소·구치소의 동선이 꼬이면 사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교도관들이 계호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 교정·교화는 뒷전으로 밀린다. 한국의 교도소·구치소에선 민원인 접견실이 수용동 외부에 위치한다. 교도관이 10여 명의 수용자를 인솔해 미로처럼 꺾인 주복도와 계단, 지하통로를 지나야 한다. 하루에 평균 11차례, 15㎞, 2만5000보를 걷는다. 일본 교도관은 이런 중노동을 할 이유가 없다. 12층 건물인 도쿄구치소는 건물 중간마다 접견실이 마련돼있다. 민원인은 수용자가 접근할 수 없는 외부공간을 따라 이동해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접견실로 올라오기 때문에 보안상 신경 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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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시설은 사회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 기본시설이다. 국가 어젠다로 선정해 관리하지 않으면 님비 현상을 막을 수 없고 정상 환경을 구현할 수 없다.

백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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