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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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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호
김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 내셔널팀 기자

김호 내셔널팀 기자

‘노란 리본의 고장’ 전남 진도 군민들은 요즘 심경이 복잡하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에 대한 감사와 새 추모시설 논란에 대한 착잡함이 교차한다.

감사는 유족들이 팽목항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 분향소의 철거에 동의해 준 데서 비롯한다. 팽목항 분향소는 세월호 희생자 시신이 수습된 장소 바로 옆에 마련된 기억의 공간이다. 진도군과 유족이 합의한 철거 공사는 지난 3일 시작됐고, 그 자리에는 팽목항의 새 이름인 진도항 2단계 공사가 본격 추진된다. 기존 항구를 손보고 여객선터미널도 새로 지어 관광객을 다시 끌어모으겠다는 계획이다.

착잡함은 팽목항 분향소가 철거되는 자리에 또 다른 추모 시설을 세우라는 일부 시민단체의 요구 때문에 생긴 정신적 갈등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침체의 늪에 빠진 진도가 분향소 철거를 계기로 활기를 되찾길 바라던 군민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새 추모 시설에 당혹스럽다. 2016년부터 진도항 2단계 공사를 진행해 온 전남도와 진도군도 “설계를 변경해서라도 지으라”는 이들의 주장 앞에 난처한 입장이다.

진도 군민들은 2014년 ‘그날’ 이후 지금까지 유가족의 심정으로 사태 수습에 적극 동참해 왔다. 배가 침몰 중이라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어선을 타고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를 도왔다. 생환해 온 이들에게 담요를 내밀고, 식음을 전폐해 기력을 잃어가는 가족들에게 음식을 떠먹이는 자원봉사자들 옆에서 말없이 거들었다. 세월호 인양 과정에서는 청정 바다가 오염되는 피해를 보면서도 오열하는 가족들 앞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남도의 대표적인 관광지였던 진도는 세월호 참사 직후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뚝 끊기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2013년 봄철(4~6월) 11만여 명에 달했던 관광객은 이듬해 같은 기간 4만여 명으로 급감했다. 진도 지역 경제는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관광 수입으로 먹고사는 군민들의 삶도 갈수록 피폐해져 왔다. 그러나 이들은 큰 슬픔 앞에 4년여 동안 불평조차 없이 세월호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함께 했다.

팽목항에는 추가 시설이 아니더라도 희생자들을 기릴 추모시설이 충분하다. 방파제의 ‘기다림의 등대’ ‘기억의 벽화’는 계속 보존된다. 팽목항 주변에는 추모 공간인 ‘세월호 기억의 숲’도 조성돼 있다. 세월호 참사는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오늘도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 삶의 현실을 이해해달라는 진도 군민들의 하소연을 그저 외면할 수 있을까.

김호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