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토론이야기] 튀어라, 그러나 지지를 받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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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교련시간에 시가행진을 했다. 시가행진에 앞서 전교생이 교련복장에 목총을 메고 운동장에 키가 큰 순으로 4열 종대로 집합한다. 큰 키는 자랑이다. 서로들 앞에 서려고 야단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순서가 정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새로 오신 교관 선생님께는 통하지 않았다. 지휘봉을 잣대 삼아 키재기를 해 줄을 세웠기 때문이다.

토론평가는 무엇을 잣대로 해야 할까. 토론자들의 비교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것도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그래서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토론은 성공이다.

6, 7년 전 중학생 원탁토론광장 때 일이다. 학생.학부모.교사 등 150명 정도가 함께 참여하는 연수행사였다. 마이크를 잡고 강의를 하면서 몇몇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런데 갑자기 한 학생이 책상을 밟고 징검다리 삼아 뛰쳐나오는 것이 아닌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학생은 왜 그랬을까. 어떻게 해서든지 남 앞에서 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 당시 우리사회는 온통 창의성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창의성만 부르짖다 보니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남에 대한 배려다.

그 이후로 원탁토론에서 강조하는 말이 있다. "튀어라. 그러나 지지를 받아라." 창조성과 공동체성. 그렇다. 우선 튀어라. 그러나 튀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따돌림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의 눈치를 보느라고 망설이는 것 또한 바보다. 튀는 것과 지지를 받는 것의 긴장과 갈등, 거기서 좋은 토론이 나온다. 튀되 지지를 받는 것, 그것이 잘하는 것이다. 토론뿐만이 아니다. 모든 공부와 모든 일이 그렇다.

구술면접과 토론의 평가항목은 여섯 가지다. ①전문성. 우선 주제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②논리성. 그 지식들이 체계를 갖추고 있는가. ③인성. 성품은 어떠한가. 토론하다 보면 인성이 드러난다. 그래서 토론으로 인성교육이나 인성평가가 가능하다. ④창조성. 남이 하지 못한 새로운 말을 하고 있는가. 이미 남이 한 말이라도 그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의미로 하고 있는가. ⑤공동체성. 다른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 지지는 두 가지다. 사회적 지지는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역사적 지지는 후손들의 역사적 평가를 의미한다. ⑥실천성.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가이다.

이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로고스 (분별과 이성), 파토스 (감정과 정서), 에토스 (사회적 관습)와 통한다. '전문성, 논리성, 인성, 창조성, 공동체성, 실천성.' 이 여섯 가지를 늘 입에 달고 살아라. 그러면 자신의 토론이 달라질 것이다. "튀어라. 그러나 지지를 받아라." 창조적이고 공동체적인 말, 그것이 잘 하는 토론이다.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강원대 교수 (wontak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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