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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EU, "넷플릭스 규제하자"…'붉은 깃발법'인가, 정당방어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유럽연합(EU)를 필두로 전세계 국가들이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와 아마존 등의 사업과 서비스를 견제하는 법안들을 잇따라 발의했다. 이같은 움직임이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 방어라는 시각과,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시각이 공존한다.

4일(현지시간) 엔가젯ㆍ씨넷 등 정보기술(IT) 전문 매체들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연내 넷플릭스ㆍ아마존 등 외국 OTT 사업자들을 규제하는 법안을 공포할 예정이다. 법안의 골자는 이 사업자들이 EU 영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전체 콘텐트 중 EU에서 제작한 지역 콘텐트 비중이 최소 30%를 넘겨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유튜브와 같은 사용자 제작 콘텐트(UGC) 플랫폼들은 EU에서 활동하는 영화ㆍTV 제작자들에게 제대로 된 콘텐트 이용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앞으로 20개월간의 유예 기간 동안 콘텐트 준수 비율을 30%에서 40%까지 자율적으로 올릴 수 있다. EU 내에서 제작한 콘텐트 뿐 아니라 EU 자본이 투입된 콘텐트도 인정된다. 이 법안은 또 로컬 콘텐트들이 서비스 내에서 좋은 곳에 배치돼있어야 한다는 구절까지도 포함시켰다. 로컬 콘텐트들을 미국 등 외산 콘텐트들과 동등하게 취급하라는 것이다.

<넷플릭스 규제 위해 나온 국내외 법안>
▶EU, 넷플릭스·아마존 콘텐트 비중 규제 법안

- 현지서 제작하거나 투자한 콘텐트 비중 30% 이상으로 맞춰야

- 대형 기업들은 콘텐트 구입·제작하면 되지만, 소규모 사업자들은 불리해

▶프랑스·독일·네덜란드, 영화진흥기금 추징 법안
- 프랑스, 넷플릭스·유튜브 등 외국 영상사업자 수익의 2%를 세금으로 부과

- 독일선 외국 사업자 연매출 중 일부를 영화진흥기금으로 내게 해

▶한국, 구글·페북·넷플릭스 '서버 국내설치 의무화' 법안
-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가 국내에 서버 설치 안하면 과징금 부과(민주당)

▶한국, 1인 방송·넷플릭스도 유료방송과 같은 규제받는 법안
- 넷플릭스·1인 방송을 방송 사업자로 규정, 방송법으로 규제(민주당)

업계에서는 EU의 이번 규제 법안도 그간 펼쳐온 ‘자국 기업 보호’ 전략의 일환이라고 해석한다. 지난 7월 EU가 구글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독점적 지위를 통해 검색엔진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악용했다”며 43억4000만 유로(약 5조7000억원)를 부과한 것처럼 EU는 수년 전부터 구글ㆍ애플ㆍ퀄컴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견제하고 있다. 이제 규제 대상을 기존 글로벌 IT 기업에서 넷플릭스ㆍ아마존 등 OTT 사업자들로 확대한 것이다.

전 세계 유료 회원 수가 1억3000만명이 넘는 넷플릭스는 국내외 방송ㆍ인터넷 생태계의 가장 강력한 위협 요소다. 프랑스는 이미 지난해 외국 OTT 사업자들의 연수익 중 2%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을 내놨다. 독일은 이들 외국 사업자들의 연 매출 중 일부를 독일 영화진흥기금으로 쓰게 했다. 자국 기업을 가장 강력하게 보호하는 중국은 넷플릭스가 아예 처음부터 진출하지도 못했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 이용자가 100만명에 육박하는 등 영향력이 커지면서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 등에서 여러 규제 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등 일정 규모 이상 서비스를 소비자들이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변 의원은 또 방송법 규제를 받지 않는 넷플릭스·1인 방송들을 방송 사업자로 정의하게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넷플릭스 등 OTT 사업자들도 방송통신발전기금 등을 내야 한다.

국내 일부 지상파 방송사 사장단은 6월 이효성 방통위원장을 찾아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 기업에 대한 정책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 교수는 "기존 국내 사업자들로서는 넷플릭스·유튜브 같은 외국 사업자들의 행보를 예측하기 힘든만큼 위협으로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다만 한국은 기존 시장에서 나오는 콘텐트들이 상품성이 뛰어나고 해외에서 잘 먹히기 때문에 여러 규제 법안들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기존 사업자들과 외국 사업자들이 공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사업자를 보호하는 방안보다는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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