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역사>피지배계급의 투쟁사로 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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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은 우리 역사를 일관되게 계급 투쟁사로 기술하고 있다.
역사란 인간이 원시의 틀을 벗어나면서부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에 벌어지는 끊임없는 투쟁의 사회운동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한국사의 전체 틀을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 법칙에 따라 원시 공동체사회, 노예 소유자 사회(고조선·삼한), 봉건사회(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로 나누고있다.
여기에 북한은 이른바 그들의 「주체사상」에 입각한 「주체사관」을 주입, 역사에 대한 대중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주체사관에서는 인류역사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며 사회의 발전은 인민대중의 창조적 운동의 집약체라고 한다.
북한은 이러한 「투쟁과 창조의 역사」로 세 가지 분야에 연구를 집중하고있다.
첫째 산업사회 이전의 생산 주역인 농민들의 봉건지배계급에 대한 항쟁이다. 『조선통사』를 보면 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왕조의 말기증상으로 농민항쟁을 민중들의 혁명적 계급투쟁으로 파악,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둘째 농업을 비롯, 생산력의 발전도 「인민」들의 자연과의 투쟁에서 얻어진 창조적 산물로 보고있다.
셋째 「인민」들의 생활정서와 억압적 사회제도에 대한 저항을 예술의 제일주의로 삼고 있다.
한편으로 주체사관은 반외세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건을 평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구려사의 강조다. 북한은 수·당의 침략을 물리친 고구려의 투쟁을 민족적 자주성의 상징으로 친다.
반면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에 의존한 국토의 일부 통합이라고 비판하고있다..
『조선통사』는 이 부분을 「신라에 의한 국토 남부통합」이라 이름짓고 있다.
같은 자주성의 맥락으로 북한은 임진왜란을 「임진 조국전쟁」이라고 부른다. 임진왜란은 봉건 일본이 봉건 조선을 침략한 것이지만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비겁한」 봉건 지배계급 대신 민중들이 전선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자각된 인민들」이 사회주의 국가의 전신인 조국 조선을 구해냈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이순신 장군도 나라를 구한 명장임엔 틀림없지만 그의 애국심은 어디까지나 봉건왕권에 충성한 양반지주계급의 방패였으므로 전쟁의 조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북한의 역사기술은 모든 관점이 피지배계급의 혁명적 투쟁과정에 모아져 있다.
북한에서의 종교는 아편에 다름 아니다. 『조선통사』를 보면 「유학과 불교의 반동성은 유물론적인 철학의 발전을 방해하여 유교는 인민대중을 동물 이하로 천대하고 멸시하였으며 불교는 미신적인 교리로 지배계급의 권력과 통치권을 신비화하였다」고 쓰고 있다.
또 『조선 철학사 연구』에서는 「이황의 주리론은 지주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선의 통치 이데올로기이며 송시열 또한 명나라를 숭배하는 등 반동적 사상가」라고 비판하는 등 계급 투쟁적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다.
3·1 운동도 부르좌 민주주의자들의 무저항주의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 근대 혁명운동사』에서는 3·1운동을 인민봉기로 규정짓고 「민족대표를 자칭한 33인은 미·일제에 호의와 이성에 호소하여 독립을 구걸하였을 뿐 인민대중의 혁명적 진출을 방해하는데 급급하였다」고 쓰고 있어 운동의 동기에 대한 축소와 당시의 대중 투쟁역량을 과장하고 있다.
특히 3·1운동 이후 전개된 항일투쟁에 대해 북한은 남한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상해임정의 법통을 정통성의 근거로 하는데 반해 북한은 김일성의 동북만주를 근거로 한 무장투쟁을 북한사회 건설의 뿌리로 삼고 있다. 『항일 무장 투쟁사』는 조선 공산당 창건을 전후하여 생겨난 김일성 주도하의 새 세대 청년 공산주의자 등의 유격활동을 소개하면서 조국해방은 「이들 새 세대 청년 공산주의자의 주체적인 사상·이론·방도에 의해 항일 무장투쟁은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해방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는 임정·광복군 등의 활동과 2차대전의 종전 등 국내외 정세를 무시한 채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해방을 가져왔다고 과장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고려대 조광 교수(한국사)는 『민족사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서 남쪽도 일제하 동북 만주의 좌익 항일투쟁을 한국사에 편입시켜야 되며 마찬가지로 북측도 임정을 중심으로 한 민족노선의 독립투쟁을 높이 평가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금기란 공개와 함께 그 신비성도 깨지는 속성을 가졌으므로 북한 원전의 공개가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또 북한의 주장도 받아들일 것은 과감히 수용하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며 저들의 무리한 주장은 그 교조적·기계적 틀 때문에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역사 관련 북한 원전은 『조선통사 상』 『조선 근대혁명 운동사』 『근대 조선 역사』 『조선 전사·근대 I』 『조선 문화사』 『고대 한일관계사』 『항일 무장 투쟁사』등 곧 나올 것까지 합쳐 10여종에 이르고 있다. <이훈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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