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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판매망 파워 … 우체국 펀드, 시장 흔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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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3일 주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우체국 펀드’가 올랐다. 우정사업본부가 우체국에서 펀드 판매를 시작한다고 발표하면서다. 그동안 펀드는 은행이나 증권사, 온라인 전문 펀드 판매사를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었다. 인터넷 반응은 전에 없던 새로운 펀드 판매 창구인 우체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증명한다.

222곳서 13개 상품 판매로 시작 #전국 2655곳으로 확대 방안 검토 #예금·보험과 달리 국가 보장 안돼 #“낮은 수수료 무장 땐 경쟁력 충분”

우체국은 ‘대어급’ 메기로 펀드 시장을 흔들까, 아니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칠까. 출발만 보면 후자에 가깝다. 이번에 우체국이 처음 선보인 펀드는 13개다. 머니마켓펀드(MMF) 5개, 채권형 펀드 4개, 채권혼합형 펀드 4개다. 펀드의 주류인 주식형 펀드 등 원금 손실 위험이 큰 펀드들은 빠졌다. 그만큼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KG제로인 통계를 보면 국내 채권형, 채권혼합형, MMF의 최근 1년 수익률(지난달 31일 기준)은 0.77~1.73%로 은행 정기예금보다 낮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비용 측면의 이점도 아직은 없다. 우체국 판매 펀드는 가입과 해지 시 한꺼번에 떼어가는 선·후취 판매 수수료가 없는 대신, 해마다 일정 비율로 내야 하는 판매 보수가 높은 ‘C형’으로만 구성됐다. 판매 보수는 펀드를 만든 자산운용사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우체국에서 가입한다 해도 낮아지지는 않는다. 아직 온라인을 통해 신규 가입할 수도 없다. 첫 가입은 창구에서 대면으로 직접 해야 하고 이후 추가 불입 때만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원금과 이자, 보험금 전액을 국가에서 보장하는 우체국 예금이나 보험의 장점도 없다. 자산운용사에서 만든 펀드를 우체국 창구를 통해서 판매(수탁 판매)할 뿐이라 예금자 보호가 되지 않고 원금 손실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체국 펀드 등장을 두고 은행과 증권사가 긴장을 늦추지 않는 분명한 이유는 있다.

먼저 막강한 점포망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일단 거점 우체국이라고 할 수 있는 총괄우체국 222곳에서만 펀드를 판매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점에 해당하는 나머지 2433개 관내 우체국에서도 펀드를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검토하고 있다. 총 2655개에 이르는 전국 우체국은 국내 일반은행 전체 점포 수(올 1분기 기준 4920개)에 버금가는 규모다. 국내 모든 증권사 지점을 합한 수(1168개)보다는 2배 넘게 많다.

또 수도권에 집중된 은행·증권사 점포와 달리 우체국은 지방 곳곳에 고루 분포한다. 최근 펀드 판매가 허용된 지역농협과 함께 기존 펀드 판매 채널에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용도 낮아질 여지가 있다. 박한선 우정사업본부 예금사업과장은 “선·후취 수수료를 판매사가 책정할 수 있는 A·B형 펀드 판매가 시작된다면 기존 은행·증권사보다 낮은 수수료를 책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수료로 무장한 우체국이 주식·부동산·원자재 등 여러 종류 펀드를 판매할 수 있게 된다면 기존 은행과 증권사의 점포 영업에는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앞으로 3년 이내에 금융위원회 인가를 추가로 받아 판매가 가능한 펀드 유형을 국내·외 주식형 펀드 등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전에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펀드의 특성과 위험성에 대해 고객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는 등의 불완전 판매 위험성이다. 금융위원회는 우체국이 철저한 교육 등을 통해 ‘우체국에서 펀드에 가입해도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주식형 펀드 등으로 판매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기존 예금 상품에 투자 상품이 추가되면서 고객의 폭이 넓어지고, 예금 연계 펀드나 연금 상품 등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괴력이 클 수 있다”며 “다만 이를 위해서는 예금이나 보험보다 제도와 상품이 복잡하고 단기간에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펀드의 단점들을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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