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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으르렁 ‘고양이와 개’ 우즈·미켈슨 100억원 맞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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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호 22면

성호준의 주말 골프인사이드

2005년 PGA 포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다툰 타이거 우즈(왼쪽)와 필 미켈슨. 이 경기에서 패한 미켈슨은 ’수모를 당했다“고 했고 이후 우즈와 벌인 2번의 우 승경쟁에서 모두 이겼다. [AFP=연합뉴스]

2005년 PGA 포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다툰 타이거 우즈(왼쪽)와 필 미켈슨. 이 경기에서 패한 미켈슨은 ’수모를 당했다“고 했고 이후 우즈와 벌인 2번의 우 승경쟁에서 모두 이겼다. [AFP=연합뉴스]

지난 4월 마스터스를 앞두고 타이거 우즈(43)와 필 미켈슨(48)은 연습라운드를 함께했다. 라이더컵 같은 팀 대회를 제외하고 두 선수가 연습라운드를 함께 한 건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11월 23일 추수감사절 1대1 대결 #이기는 사람이 상금 다 가져가 #행실, 경기 스타일 완전 대조적 #돌아서면 뒤에서 욕하는 사이 #최근엔 함께 팀 이뤄 연습 라운드 #늦게나마 성사된 라이벌전 다행

사이가 나쁜 둘이 함께 연습라운드를 한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한편이 되어 프레드 커플스, 토마스 피터스와 2 대 2로 내기를 해 이겼다. 우즈는 파 5인 15번 홀에서 330야드 정도의 드라이브샷을 날리고 이글을 잡아냈다. 미켈슨은 “우즈가 좋은 샷을 날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본 대회에서도 우즈가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즈와 미켈슨은 고양이와 개다. 우즈가 데뷔한 96년 이래 22년 동안 으르렁거렸다. 우즈 등장 이전 미켈슨이 PGA 투어의 왕자였다. 잘생긴 얼굴에 완벽한 미소, 아마추어로서 프로 대회에서 우승한 실력, 우승하면 금발의 와이프와 포옹하는 그는 딱 PGA 투어의 포스터 보이였다.

그런데 우즈가 나오면서 뒤집어졌다. 당연히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둘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뛰어난 선수”라고 했지만 건성이었고 뒤에서는 서로 욕했다. 우즈는 미켈슨이 우호적인 백인 기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실력 이상의 과도한 인기와 광고 수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즈의 어머니는 미켈슨을 ‘필 팻 보이(fat boy·돼지)’라 불렀다. 우즈는 “필에게 이기면 더 기분이 좋다”고 했다.

우즈의 어머니 미켈슨을 ‘돼지’라 불러

우즈의 전 부인 엘린 노르데그린(오른쪽)과 미켈슨의 부인 에이미 미켈슨. [로이터=연합뉴스]

우즈의 전 부인 엘린 노르데그린(오른쪽)과 미켈슨의 부인 에이미 미켈슨. [로이터=연합뉴스]

미켈슨은 2003년 “우즈는 나보다 스윙 스피드는 빠른데 열등한 장비를 써 거리가 덜 나간다”고 했다. 우즈와 그의 스폰서 나이키를 겨냥한 일석이조 돌팔매였다.

2004년 라이더컵에서 두 선수의 사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두 선수는 첫날 첫 경기 포볼 매치 한 조에서 경기했다. 미국 캡틴 할 서튼은 미국의 원투 펀치를 한 조로 묶어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두 선수는 이 조편성에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기 내내 서로 얘기를 안 했고 매치에서 졌다. 둘째 날 포섬경기에도 캡틴은 둘을 한 조에 붙여 설욕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미국은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우즈 커리어에서 가장 큰 라이벌은 미켈슨이다. PGA 투어 통산상금은 우즈가 1억 1235만 달러, 2위 미켈슨이 8784만 달러다. 우즈는 메이저 14승 포함, PGA 투어 79승을 했고 미켈슨은 메이저 5승에 투어 43승을 했다. 꽤 차이가 나지만 우즈의 가장 근접한 라이벌이 미켈슨이다, “나는 우즈의 팬”이라고 대놓고 항복했던 어니 엘스 등과 달리 미켈슨은 우즈와 끝까지 드잡이를 했다.

특히 한 조에서 서로의 눈을 보고 경기했을 때 미켈슨은 우즈에 밀리지 않았다. 둘이 함께 라운드 한 경기가 37번이다. 두 선수의 스코어를 비교하면 우즈가 18번, 미켈슨이 15번 좋은 성적을 냈다. 스코어가 같았던 라운드는 4번이다. 최종라운드 우승 경쟁을 한 대회도 5번 있었다. 우즈는 2001년 마스터스에서 68타를 쳐 69타를 친 미켈슨을 꺾었다, 2003년 뷰익 인비테이셔널, 2005년 포드 챔피언십에서도 우즈는 끝까지 따라붙는 미켈슨을 제치고 우승했다.

포드 챔피언십에서 패배한 후 미켈슨은 “커다란 수모”라고 방송에 얘기했고 이후 챔피언조 경쟁에서 지지 않았다. 미켈슨은 2007년 도이체방크 챔피언십에서 66타를 치면서 67타를 친 우즈를 제치고 우승했다. 2012년 AT&T 프로암 챔피언조에서 미켈슨은 64타를 쳐, 75타를 친 우즈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고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필 미켈슨(左), 타이거 우즈(右). [AP=연합뉴스]

필 미켈슨(左), 타이거 우즈(右). [AP=연합뉴스]

두 선수는 고양이와 개처럼 사이만 나쁜 것이 아니라 고양이와 개처럼 다르기도 하다. 홀로 다니기를 좋아하는 고독한 승부사 우즈를 고양이, 사교성 좋은 미켈슨을 개로 비유할 수도 있겠다. PGA 투어에서 팁이 가장 후한 선수가 미켈슨이다. 식당, 라커룸 등에서 100달러짜리를 뿌리고 다닌다. 가장 팁이 인색한 선수가 우즈다. 팁을 안 줄 때도 있고 1달러짜리를 놓고 가는 일도 있었다. 돈이 가장 많은 우즈가 그러니 서빙 종업원들이 아주 싫어했다.

사인을 가장 잘해 주는 선수가 미켈슨, 지독하게 사인을 안 해 주는 선수가 우즈였다. 우즈는 “내가 모자에 사인을 해 주면 다음날 그 모자가 경매사이트에 나오더라. 나는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겠다”고 했다. 우즈는 미켈슨이 그런 자신을 의식해 일부러 팁을 후하게 주고 사인을 많이 해 준다고 생각했다.

가장 가족적으로 보이는 선수가 미켈슨이다. 미켈슨은 1999년 US오픈 우승 경쟁을 하면서 “출산을 앞둔 부인이 신호를 보내면 우승 퍼트를 앞두고라도 바로 달려가겠다”며 삐삐를 차고 경기했다. 지난해에도 딸이 고등학교 졸업식을 한다고 US오픈에 빠졌다.

반면 우즈는 가족보다 일이 먼저였다. 섹스 스캔들 후 부인이 “충격에서 벗어날 때까지 2년간만 골프를 접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거절하고 이혼했다. 우즈는 2007년 US오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가까스로 첫 아이의 출산을 지켜봤다. 미켈슨처럼 삐삐 같은 것은 차고 나가지 않았다.

미켈슨이 우승하면 치어리더 출신 금발의 예쁜 부인과 딸들이 달려와 포옹했다. 우즈는 이를 의식했다. 그리고 모델 출신 엘린 노르데그린과 결혼, 미켈슨을 제치고 최고 미녀를 부인으로 둔 선수가 됐다. 금발 미녀 노르데그린은 우즈의 트로피였다.

같은 조서 기싸움 땐 미켈슨이 안 밀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우즈와 미켈슨은 오는 11월 23일 추수감사절에 900만 달러(약 100억원)를 놓고 승자가 다 먹기 1 대 1 매치플레이 경기를 하기로 했다. 우즈가 등장한 이벤트 골프 매치는 ‘빅혼의 결투’가 유명하다. 2000년 우즈와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캘리포니아 주 팜데저트의 빅혼 골프장에서 100만 달러를 걸고 1 대 1 매치를 치렀다. 한 타 차로 진 우즈는 더 이상 이 이벤트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즈는 초청료로 100만 달러를 받아 손해는 아니었지만 잠재적인 라이벌인 가르시아가 자신을 만만하게 보게 되면 메이저대회 등에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프로모터는 우즈에게 “2 대 2로 경기하면 져도 당신 책임이 아니다”라고 설득해 대회는 이어졌다. 그래서 우즈·소렌스탐-데이비드 두발·카리 웹 등의 2대2 매치로 치러졌다. 우즈는 가장 큰 라이벌인 미켈슨과 1 대 1로 승부를 벌이지는 않았다. 이겨야 본전, 지면 위험이 큰 승부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선수의 1 대 1 매치플레이는 연습경기 동반 라운드처럼 신기한 일이다. 십자군 전쟁 때 이슬람의 명장 살라딘과 기독교의 사자왕 리처드 1세는 처음엔 이교도의 장수를 증오했지만, 전투를 거듭하면서 상대의 지략과 용맹을 경험하고 서로 존경하게 됐다고 한다. 베트남전 접전지에 출동하던 미군 해병과 북베트남의 정예 부대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고 보고된다.

우즈와 미켈슨의 관계도 비슷할 것이다. 두 선수는 요즘 친구가 된 것 같다. 고되고 치열한 여행일수록 강렬한 추억이 된다. 또 넘어야 할 강한 라이벌이 있었기 때문에 두 선수가 더 발전하고 존경받을 수 있었다. 두 선수가 발톱을 세우던 젊은 시절 이런 대회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늦게나마 다행이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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