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보다 먼저 출근하는 '학교 최고 신참' 교장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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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등교지도(복장점검)하는 배상식 서라벌 중학교 교장

서울 우이동 서라벌중학교의 배상식(65) 교장은 '수위보다 먼저 출근하는 교장'으로 통한다. 평균 출근시간은 6시 40분. 학교를 한바퀴 돌며 쓰레기를 줍고 아이들이 공부할 교실도 손수 정리한다.

학생들이 등교할 시간인 7시 30분쯤부터는 교문 앞으로 나선다. 와이셔츠가 겉옷 밖으로 빠져나온 학생, 바람머리 학생을 불러 조용히 타이르는 것도 배 교장의 일이다. 요즘에는 배 교장과 즉석 면담을 하기 위해 자녀와 함께 등교길에 오르는 학부모도 많아졌다고 한다.

배 교장은 "교장은 지휘.감독하는 사람이 아니다. 학교에서 가장 신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 교장은 서울 북중공업고등학교, 창덕여자중학교 등을 거쳐 교육부에서 연구관으로 재직한 후 청담중학교 교장 자리를 끝으로 퇴직한 지 1년만에 서라벌중학교의 초빙 교장으로 학교에 왔다.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계약직이다. 배 교장이 선뜻 나선 이유는 옆집 할아버지같은, 권위를 벗은 교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 교장은 아이들을 위해 직접 교편을 잡고 논술 지도에도 나섰다.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후 논술을 지도한 경력만 30년이다. 일주일에 두번 2.3학년 아이들 40명을 뽑아 논술을 봐준다. 아침에 출근해 신문 6개를 읽고 스크랩해 주제를 정하는 것도 빠지지 않는 일과다. 평교사 시절부터 모아온 스크랩 책만 500권이 넘는다.

배 교장은 "물론 교장은 수업 의무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 잘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장이 내준 이번주 논술주제는 '인간이 곧 자연의 재앙인가?'하는 환경문제. 신문에서 한문 단어가 나오면 밑줄을 그어 써보도록 하고 중요 영어단어도 가르친다. 지난해에는 국어 교사들과 함께 논술 교재도 직접 펴냈다.

학교 운영위원회가 선임하는 초빙 교장제는 각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했다.

교육부 교원정책과의 마소정 사무관은 "2000년 도입된 초빙교장제도가 퇴직 교장들의 정년 연장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등 비판이 많아 교육부 차원의 대책마련을 준비중이었다"며 "서라벌중학교는 사립학교지만 배 교장과 같은 분은 초빙 교장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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