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을 기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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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상이 몇 번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걸어온 발자취라 생각한다. 10일 타계한 동곡(東谷)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부음을 접하고, 먼저 떠오른 것은 30년 가까운 그분의 정치 역정 속에서 '온건''협상''타협'이라는 그분의 철저한 신념과 그것을 현실에 옮긴 정치적 업적이었다.

이승만 독재가 절정에 달했던 자유당 집권 말기에 동곡선생은 초선 의원으로 상공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4.19와 같은 '유혈 혁명'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이재학 부의장과 더불어 '온건파 자유당' 서클을 만들어 내각책임제 개헌을 줄기차게 추진했다. 정권교체를 혁명이 아닌 개헌을 통해 평화적으로 성취하려 했던 것이다. 동곡 선생의 이러한 정치적 신념은 공화당 원내총무 시절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산적했던 난제들을 야당과의 협상으로 해결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동곡 선생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따뜻한 평화주의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용기있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당 소속 장관에 대해 불신임 결의안이 제출되었던 것이다.

강경파 측에서는 정부 방침에 따라 무조건 부결을 주장했지만, 국민여론과 불신임 사유의 정당성을 인정한 동곡 선생께서는 비록 소속 당원이었지만 장관 불신임 안을 밀어 붙였다. 이런 일은 당시로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동곡 선생으로부터 한가지 배운 것이 있다. 중앙 정치가 아무리 바빠도, 고향의 선거 구민에 대해 끊임없이 따뜻한 사랑과 정성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동곡 선생이 7선을 하는 동안 엄청난 정치적 역경을 겪었지만, 선거 구민들은 한사코 동곡 선생을 아끼고 감싸주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10대 의원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은 그분을 당선시켜줬다.

나는 지난해 동곡 선생의 미수연에서 "강하면 부러지나, 온건과 타협은 부드럽지만 강하고 영원하다"라고 그 분의 정치적 신념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제 동곡 선생을 보내면서 그 분의 발자취를 꼼꼼히 살펴보고 우리가 걸어 온 길을 반성하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숙고할 때인 것 같다.

전 국회의장 이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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