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질된 황수경 통계청장…"윗선 말 잘 듣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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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통계 표본 논란 속에서 갑자기 경질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은 27일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며 “그것이 국가 통계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는 올바른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장 경질 논란 확산 #전임자들 "국가 통계 신뢰도 무너질까 걱정"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황 전 청장은 이날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통계청장으로서 통계청의 독립성ㆍ전문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해왔다”며 이렇게 밝혔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 [연합뉴스]

황수경 전 통계청장. [연합뉴스]

그는 이어 “통계청이 공표하는 통계에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이를 기반으로 치열하게 논쟁을 하는 것을 보면 나름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며 “국가 통계는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함에 있어 기준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계청 관계자는 “본인이 별도로 마련해온 이임사를 읽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며 “이외에 이임식에서 특별히 남긴 말은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이임식 직후 한 매체와의 가진 인터뷰에서는 그간의 고충을 내비쳤다. 황 전 청장은  ‘가계동향조사 소득 통계 신뢰도 문제 때문에 경질된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저는 (이유를) 모른다. 그건 인사권자의 생각이겠죠”라며 “제가 그렇게 (청와대 등 윗선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강 전 청장의 경질을 놓고 소득분배 지표가 나빠진 것으로 조사된 가계소득 통계와 관련된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1ㆍ2분기 통계청 조사에서는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소득이 한 해 전보다 각각 8%ㆍ7.6%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애초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를 지난해까지만 작성하기로 했다가, 황 청장 취임 후 정치권 및 학계 등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올해도 계속하기로 방침을 바꿨다.<본지 8월27일 18면 참조>

특히 청와대가 자신들의 코드에 맞는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신임 통계청장으로 임명하면서 통계청의 독립성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는 5월 말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해 논란이 됐던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 90%’ 자료에 관여한 전력이 있다. 소득통계 표본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정부가 앞으로 통계 수치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거나,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주문형’ 통계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이른바 ‘MB 물가’를 만들면서 가격 변동 폭이 큰 금반지를 조사 품목에서 제외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전임 통계청장들은 납득이 안가는 인사라고 입을 모았다. 전임 통계청장이었던 유경준 한국과학기술대 교수는 “청와대가 신임 청장을 임명하면서 내놓은 입장을 보면 청와대가 황 전 청장 때 나온 통계에 불만이 컸을 알 수 있다”며 “통계청의 독립성 훼손은 물론 국가 통계의 신뢰도 자체가 무너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인사의 ‘빌미’가 된 것으로 알려진 가계동향조사 표본과 관련해 “현 정부에서 표본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표본을 늘린 것”이라며 “표본 설계의 적절성에는 문제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민간 출신 여성으로 첫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도 “만약 정권에 불리한 통계가 나왔다는 이유로 통계청장을 바꿨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정상적 인사권 행사였다고 하더라도 논란을 뻔히 짐작했을 텐데 왜 이때 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계의 영역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적 무풍지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며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선진국처럼 통계청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통계청을 별도 기관으로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ㆍ하남현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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