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NYT를 '세계의 신문'으로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미국 뉴욕 타임스를 '세계의 신문'으로 업그레이드시킨 에이브러햄 로젠탈 전 뉴욕 타임스 편집인이 10일(현지시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84세.

'에이브'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는 60년 간 뉴욕 타임스에서 기자.편집국장.칼럼니스트로 재직하면서 이 신문의 부흥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1971년 편집국장일 때 미국 국방부보고서(펜타곤 페이퍼)의 폭로를 주도했다. 7000쪽 분량의 이 비밀 보고서는 베트남전과 관련된 미국 정부의 부도덕성을 보여 주는 국방부의 비밀 보고서였다. 당시 이를 '보도하지 말라'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로젠탈은 보도를 결정했다. 미국 사회는 이 보고서의 보도를 계기로 베트남전을 두고 엄청난 논쟁에 휩싸였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4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로젠탈은 43년 뉴욕시립대에 재학할 때 대학생 통신원으로 뉴욕 타임스와 인연을 맺었다. 동유럽의 공산권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WTO)에 관한 기사로 6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해외특파원 시절인 62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한국의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 장문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로젠탈은 69년 뉴욕 타임스의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TV 시대를 앞두고 신문이 조만간 몰락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되던 즈음이었다. 그는 뉴욕 타임스를 확 뜯어 고쳤다. 비즈니스.스포츠 섹션을 만들고 주말특집판과 과학면을 신설했다.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는 '정정 기사'도 도입했다. 그가 주도한 신문 혁명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독자와 광고 수입이 늘었다. 한편으로 그는 보수적인 성향이라 '게이(동성애자)' 같은 새 단어의 사용을 아예 금지하기도 했다.

86년 로젠탈은 칼럼니스트로 변신했다. 그러다 99년 갑자기 해고를 당한다. 후임 편집인 막스 프랑켈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로젠탈은 마지막 칼럼에서 "신에게 세 가지를 감사한다. 첫째는 미국시민으로 태어난 것, 둘째는 뉴욕 타임스의 기자가 된 것, 그리고 내 칼럼때문에 다른 신문의 칼럼니스트들이 속을 끓이도록 만든 기회를 가진 것"이라고 썼다.

최원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