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분야의 성수대교 붕괴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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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이인규 3차장 검사가 12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과 연구비 사용 명세 등에 관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검찰은 수사 초기 대검찰청 과학수사기획관실의 '디지털 증거 분석 시스템'을 이용해 일찌감치 이번 사건의 윤곽을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은 1월 12일 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대한 분석에 들어가 3일 만에 "김선종 전 연구원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한다. '줄기세포''배양' 등의 단어를 입력해 관련자 33명의 e-메일 5만여 건을 스크린 한 결과가 근거가 됐다. 특히 김씨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된 시기에 미국 10여 개 대학에 지원서를 보낸 사실을 파악해 '섞어심기'의 결정적 동기를 잡아냈다.

◆ "학문적으로 사실상 사형선고"=수사팀은 애초 2월 검찰 정기 인사 전까지 줄기세포 진위에 대한 수사를 일단락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황우석 전 교수에게 논문 조작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며 석 달을 더 끌었다. 수사팀 관계자는 "사이언스 측에서 황 전 교수를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해달라는 요구가 없어 법 적용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미국.프랑스.독일 등에서는 논문 조작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검찰은 "연구 내용의 진위를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게 되면 학계의 자정 기능이 무력화되고 헌법(제22조)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작된 논문을 근거로 민간지원금 등을 타낸 황 전 교수의 행위에 대해 사기 혐의를 적용함으로써 사실상 논문 조작의 책임을 물었다. 홍만표 특별수사팀장은 "2005년 논문의 특징은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황 전 교수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 점을 강조했기 때문에 후원금을 낸 사람들을 처음부터 속일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황 전 교수, 김 전 연구원 등을 불구속 수사한 것에 대해 "학문적으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구속까지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데다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게재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논문 조작과 줄기세포 '섞어심기'가 결합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과학 분야의 성수대교 붕괴사건'"이라고 말했다.

◆ "황 전 교수 목검 걸고 출두"=검찰은 3월 2일 김 전 연구원에 대한 소환조사에서 "줄기세포를 섞어심기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섞어심기를 한 동기와 과정에 대한 상세한 진술을 받은 수사팀은 김 전 연구원과 권대기 연구원을 서울대 연구실로 데려가 줄기세포 조작 과정을 모두 시연토록 했다. "직접 실험하는 과정을 모두 확인해야 논란의 여지를 없앨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수사팀 관계자는 "김씨가 MBC PD수첩의 취재 이후 미국에서 치사량에 가까운 수면제를 먹은 사실이 확인돼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황 전 교수와는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3월 2일부터 두 달 동안 소환조사를 받은 황 전 교수는 검찰이 제공한 식사는 물론 물 한 잔도 마시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검찰에 출두하면서는 목에 작은 목검(木劍)을 걸고 나오기도 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목검을 걸고 가면 검찰에 맞서 이길 수 있다며 어느 스님이 줬다고 한다"고 전했다.

◆ "거짓말 탐지기도 통하지 않아" =홍 특별수사팀장은 "황 전 교수와 김씨가 진술한 내용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4월 말에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실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 전 교수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서도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드러난 2004년 논문의 줄기세포 데이터 조작 사실을 황 전 교수가 부인했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황 전 교수의 심리상태를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byungjoo@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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