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주장까지 "그대로 수용"|시국사범 「대 석방」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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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 대통령이 11·26 담화를 통해 밝힌 시국관련사범 「대 석방」, 사면·복권은 야당 가·재야단체의 목청 높은 주장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6·29 이후 야당 권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시국사범의 전면석방을 주장해 왔으나 정부·여당은 마치 생색을 내듯 소규모로 인색하게 처리해 구속자 문제는 그 동안 계속 야당이나 운동권에 의해 중대 이슈로 제기되곤 했다.
이들은 대부분 민주화를 요구하다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집시법의 개정이 기정 사실화된 현실을 감안하면 어떤 형태로든 시국사범 처리는 불가피했던 셈이었다.
특히 담화에서 「지난 시대 잘못을 청산하는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는 첫째 항목으로 시국사범 처리를 강조한 것은 시국사범의 전면 석방·사면에 구시대 청산의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시국사범처리=이번 시국사범 처리는 「권리가 제한된 사람은 모두 복권되도록 하고 형을 받고 있는 사람은 석방되도록 하며 현 정부 출범이후 시국문제와 남북학생회담 주장 관련자는 관용을 베푼다」고 되어있어 지금까지 기결수에 국한됐던 시국사범처리와 달리 기·미결수와 수사중인 사람까지 포함한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또 「이 문제에 대해 야당 측의 합리적 주장도 반영」한다는 것은 일부 국가보안법 위반자등 정부가 그 동안 소위 「공안사범」이라며 시국사범과 분류를 달리해온 사람들까지도 폭넓게 대상으로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국 그 동안 똑같은 사건을 놓고 「시국사건」과 「공안사건」으로 서로 시각이 달라 구속자수조차 여야가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간첩을 제외한 모든 시국·공안사범」이 그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번에도 그 대상자 선정에 대해 야당을 납득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구속자 석방」의 불씨는 계속 남게될 것이 분명하고 지금까지의 악순환 논쟁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지 도 모른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구속중인 시국사범은 3백50명 선이다. 올 들어 대통령 취임기념 특별사면(2월27일) 1백25명, 광복절·개천절 등 3차례의 특별가석방 1백34명 등 모두 2백59명이 풀려나고 남은 숫자다.
구속중인 사람은 기결수·미결수·피의자 등 처리단계로 보아 3가지로 분류될 수 있고 지금까지는 기결수만 대상이었으나 이번에는 모두가 풀려날 전망이다.
기결수는 종전대로 특별사면·가석방으로 처리될 것이 확실시되며 미결수는 ▲법원의 협조를 받아 재판을 서둘러 집행유예 판결 ▲구속집행정지 ▲구속취소 등이 가능하며 피의자는 검찰의 불기소(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될 수 있다. 또 이들은 석방과 아울러 사면·복권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기결수 중 주요 석방 대상자는 전 민통련 정책실장 장기표씨, 전 민노련 사건의 이태복씨, 서노련 사건의 김문수씨, 부산미문화원사건의 김현장·문부식씨 등으로 이들 중 부산미문화원 사건은 피해자가 숨졌기 때문에 이들의 석방여부는 관심거리다.
또 주요 사면·복권 대상은 이신범·김옥두·한화갑·이부영·김근태씨 등으로 이들은 모두 복권될 것이 확실하다.
법무부 실무진들은 실무 작업에 최소한 2주일이상 걸린다고 밝히고 있어 실시시기는 빨라야 12월 중순께로 예상된다.
◇전두환 전대통령 사법처리=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고한 입장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 담화에서 전임 대통령의 사죄를 너그러이 받아주고 더 이상의 단죄는 없어야 한다」고 밝힌 것은 바로 「정치적 사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사면」은 사법처리를 못하게 할 법적인 근거는 없지만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간주할 경우 검찰의 수사권 발동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국내·국외에서 은닉재산이 드러날 경우의 처리는 관심거리.
담화에서도 「앞으로 정부가 국민여러분의 협조로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조사해서 추징이나 몰수를 한다는 뜻인지, 형사소추도 가능하다는 뜻인지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법조계에서는 담화문 중 상당 부분이 전 전 대통령문제를 다루면서 국민들에게 관용을 호소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소추-형사처벌은 없을 것으로 보고있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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