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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생명 앗아간 총기 관리의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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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서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백경서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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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총에 맞았다던데 설명 좀, 설명 좀 해주세요….”

21일 오후 경북 봉화군의 장례식장. 이날 오전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숨진 봉화군 소천면사무소 이모(38) 주무관의 아버지(75)는 아들의 영정이 들어오자 한참을 오열했다. 1남 4녀 중 막내였던 이 주무관은 6수 끝에 꿈에 그리던 공무원이 됐다. 지난해 소천면에서 성실히 일한 공을 인정받아 8급까지 승진한 자랑스럽고 귀한 자식이었다. 아버지는 "이제 막내의 출근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며 풀썩 주저앉았다.

이 주무관을 희생시킨 엽총 사건은 대한민국이 더는 '총기 청정국'이 아니란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 개인이 소지한 총기는 16만3000정(2015년 기준)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국내서 모두 72건의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 이중 고의로 발생한 사고가 32건이나 된다. 이 기간에 31명이 목숨을 잃고 51명이 부상했다.

지난 21일 엽총 난사 사고가 난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 유리창에 탄흔이 선명하다. [뉴스1]

지난 21일 엽총 난사 사고가 난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 유리창에 탄흔이 선명하다. [뉴스1]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는 데는 허술한 관리가 한몫하고 있다. 현행 총기 관련 법에 따르면 사냥용이나 레저용 총기는 모두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만 구매와 소지가 가능하다.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 질환자는 총 소지를 제한한다. 개인 총을 보유한다 해도 평소 경찰서에 영치했다 필요할 때만 신청서를 내고 찾아가게 돼 있다.

문제는 총기를 내준 이후 관리가 안 된다는 데 있다. 난사 사건의 용의자 김모(77)씨는 아로니아를 재배하면서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농작물에 피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총기 사용 허가를 받았다. 사건 당일에도 "까마귀를 쫓는 데 쓰겠다"며 총을 반출해 놓고는 평소 물과 쓰레기 소각 문제로 잦은 다툼을 하던 승려가 주지로 있는 사찰로 찾아가 승려 임모(48)씨를 향해 총을 쐈다. 이어 면사무소로 들이닥쳐 "손들어"라고 말한 뒤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고, 현장에 있던 이 주무관 등 공무원 두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이번 사건은 평소 경찰서에 총을 보관하는 것만으로는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총기 소지 자격을 강화하라"는 주문이 올라오고 있다. 총기에 GPS를 부착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더 이상의 황당한 비극을 막으려면 총기 소유 자격부터 보관, 반출, 사후 관리까지 전 과정을 점검해볼 때다. 평화로운 가정을 한순간에 고통에 몰아넣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