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퇴장…국민표정 착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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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대통령직을 떠난 뒤 친·인척이 비리와 관련돼 구속되고 나에게 비난의 화살이 퍼부어지는 것을 w지켜본 지난 9개월은 차라리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 괴로웠습니다.』
전두환전대통령의 대국민사과성명 발표가 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된 23일 오전 시민들의 눈과 귀는 온통 TV에 모아졌다.
시민들은 26분을 위해 9개월동안 벌여온 국력낭비를 아쉬워하면서 전씨의 자진해명·사과를 계기로 5공 비리의 과감한 청산을 통한 화합의 새 시대를 기대하는 모습이었으나 일부 미흡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날 연희동 전씨집 주변 일대에는 이른 아침부터 5천여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펴는 가운데 5백여명의 주민과 2백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 전씨의 은둔 길을 지켜봤다.
◇자택주변=22일에 이어 23일 전씨집에는 이른 아침부터 전씨와 친분이 두터웠던 전·현직 민정당관계자와 친척 등 30여명이 찾아와 석별인사를 나눈 뒤 침통한 표정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23일 오전9시5분쯤에는 전청와대 정무수석 허문도씨가 『인사를 드리러왔다』며 찾아와 취재진의 집중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은둔 길=전씨부부는 TV회견이 끝난 10여분후인 오전10시15분쯤 대문을 나서 진한 베이지색 그랜저승용차를 타고 은둔 길을 떠나 성남쪽으로 향했다.
짙은 회색콤비상의에 노타이 차림으로 대문을 나선 전전대통령은 대문앞에 모여있던 보도진들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악수를 나누기도 했으나 뒤따라 나오던 이순자씨는 윤길중민정당대표 부인 등 2∼3명에게 둘러싸여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홀리기도 했다.
전씨부부는 강원도에 있는 백담사로 가 은둔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반응=골목길에 나와섰던 주민들은 『전씨가 떠나 학생들의 기습시위 공포와 경찰의 삼엄한 경비로 인한 생활불편 등이 사라지게돼 홀가분하다』고 입을 모았으나 일부 주민들은 『막상 떠난다니 섭섭하다』고 연민의 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가지=오전 9시35분 전전대통령의 사과방송이 시작되자 일반직장인과 가정에서는 일손을 멈춘 채 TV앞에 모여 전대통령의 은둔 길을 지켜봤다.
전씨의 사과방송이 계속되는 동안 서울 광화문·시청앞 등 시내중심가는 평소보다 행인들과 자가용차량운행이 훨씬 줄어 한산했고 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 대합실의 TV앞에도 30∼40명의 여행객들이 몰려 전씨의 마지막 고별사에 귀를 기울였다.
이처럼 전씨의 사과방송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이날 TV시청률이 평소의 두배인 74·67%를 기록하기도 했다.

<각계 의견>
▲성민록변호사=정치철학 없이 권력욕만으로 집권한 한 정치군인의 말로를 지켜보는 이나라 정치인들과 정권에 야심을 갖고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역사적 교훈을 준 이 순간을 정치인들 모두가 자신을 참회하는 계기로 삼고 다시는 국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정치가 이룩되어야 할 것이다.
▲임현진교수(서울대·사회학)=생각보다 상당한 성의가 담긴 사과성명으로 보인다.
물론 전두환씨로 대표되는 5공 비리에 대한 해결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한 것은 미흡했지만 5공 비리의 상당부분은 현6공화국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완전한 비리청산은 이제 6공화국의 몫으로 남겨졌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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