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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의 비극'이 영어 때문이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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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 글의 전체 맥락엔 잘못된 것이 없다. 영어가 국제사회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것, 영어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10여 년 이상 영어를 배웠는데도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등은 모두가 수긍하는, 객관적이고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기러기 가족과 기러기 아빠를 만든 근본 원인을 '영어'의 문제로만 평가한 것은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기러기 가족은 영어 맹신자들이 아니다. 그러니 영어마을을 기러기 가족에 대한 특단의 대책으로 거론하는 것은 마치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모두 감기 환자라고 처방하는 것과 같다.

물론 자녀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지만, 영어 하나 때문에 기러기 가족을 결심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에 소개되는 기러기 가족들에 대한 소식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다. 안타까운 죽음 얘기도 있고, 부부와 자녀의 탈선을 조장하는 범죄 얘기도 들린다.

기러기 가족들이 국부를 유출한다며 대놓고 매국 행위로 규정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한국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또 다른 희망을 창출하고자 했던 기러기 가족 중에 아예 국적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도 있단다. 기러기 가족도 저마다 사연이 다르고 나름의 고통이 있다.

이들을 덮어놓고 폄하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 행위와 다름없다. 기러기 가족 문제를 다룰 때 좀 더 주의해 주었으면 한다.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 겸 기러기 서포터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