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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는 국민연금 반발 … 급하게 한발 빼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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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팔아서라도 돈 내라고? 60세 정년에 자식 없고 집 한 채에 자동차 있으면 수십만원 의료보험료와 국민연금 (내느라) 처음에는 차 팔고 나중에는 집 팔고….”

65세까지 내고 68세 받는 개선안 #“집·차 팔아 연금 내라는 건가”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비판 빗발 #박능후 “자문안일 뿐 확정 아니다”

11일 중앙일보 6면 ‘정년은 60세인데 국민연금 내는 건 65세까지? 반발 클 듯’ 기사의 네이버 댓글 중 네 번째 공감을 많이 받은 글이다. 약 2만 개의 댓글에다 1만 명 넘게 ‘화나요’가 붙었다.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의 개선안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부 조항에 반발이 거세다. 10~1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1000개가 넘게 국민연금 반대 또는 비판 청원이 제기됐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정부가 긴급 진화에 나섰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2일 오전 입장문을 내고 “최근 언론 보도 등에서 재정계산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내용이 확정적인 정부안처럼 비치는 것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보험료 인상, 가입연령 상향 조정, 수급 개시 연령 연장 등은 위원회 자문안으로 논의되는 일부 안일 뿐 정부안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재정계산은 출산율·고령화, 경제활동 참가율 등을 추정해 5년마다 70년 후의 살림살이를 따지고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민간 전문가가 재정·제도·기금 등 3개 위원회에 참여해 개선안을 만들며 17일 공청회에서 공개한다. 이걸 토대로 정부안을 만들어 대통령 승인을 받아 국회에 10월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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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반발이 거센 조항은 보험료 납부(가입) 상한 연령과 연금 수령 개시 연령 연장이다. 보험료를 더 오래 내고 연금은 더 늦게 받자는 것이다. 지금은 만 60세가 되면 자동적으로 국민연금 대상자에서 탈락해 보험료를 안 낸다. 연금 수령 연령은 올해 62세며, 5년마다 한 살 늦어져 2033년 65세가 된다. 위원회는 얼추 여기에 맞춰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올리자고 제안했다. 지금이야 본인이 원하면 65세까지 가입하면 된다. 기사 댓글 작성자 2만여 명 중 40대가 36%로 가장 많고, 50대 이상(29%)이 다음이다. 중산층 반발이 거세다. 국민연금의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은 데다 최근 기금운용본부장(CIO) 인선에 청와대 개입이 드러나면서 반발이 더 커졌다. 연금 받을 나이에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니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상한 연령 연장은 기금 입장에서는 손해다. 현 제도가 낸 돈보다 훨씬 많이 받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12일 트위터에서 “국민연금의 평균 수익비는 1.6~2.9배며 민간보험사 개인연금은 1배를 넘지 못한다”고 말했다. 재정계산 관련 위원회의 한 전문가는 “가입 상한 연령을 늦추면 오히려 연금 기금에 손해가 생긴다. 연장하지 않는 게 재정에는 더 좋다”며 “하지만 노후 연금 수령자를 더 늘리고 연금액을 올리려면 65세로 늦추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인은 회사가 보험료를 절반 내주도록 바뀌기 때문에 이득이며  사정이 안 좋으면 보험료를 안 내도 된다”고 말했다.

“연금 받을 나이에 돈 더 내라고?” 40대가 반발 가장 커 

경총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은 평균 53세 무렵에 주된 직장을 퇴직한다. 소득이 없으면 국민연금(조기연금)을 깎아서 1~5년 당겨 받는 사람이 지난해 3만7000명에 달한다. 60대에 일해도 소득이 그리 많지 않아 보험료를 떼기 부담스럽다.

상한 연령 연장은 크게 보면 이득이다. 연금을 받으려면 최소한 10년 보험료를 부어야 하는데, 이걸 채울 기회가 늘어난다. 10년을 못 채우면 일시금으로 받고 끝이다. 연금으로 받는 게 훨씬 유리하다. 또 가입 기간을 늘리는 것만큼 연금 늘리기에 도움되는 게 없다.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그렇다. 가령 월소득 200만원인 사람이 10년을 채우면 월 23만원의 연금이 나온다. 5년 더 부어 15년 부으면 월 연금이 월 10만7000원 늘어난다. 5년간 약 1000만원의 보험료를 더 내고 82세까지 17년간 2182만원을 더 받는다. 이 때문에 60세 넘어서도 임의로 보험료를 계속 내는 사람이 올해 5월 40만3078명에 달한다. 2010년의 8.1배로 늘었다. 민주당 정춘숙 의원 자료(2016년)에 따르면 65세 미만으로 연장하면 2035년까지 국민연금 가입 인구가 418만 명 늘고, 연금 수령자가 64만 명 증가한다.

하지만 당장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는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낮은 소득대의 가입자가 늘어나면 전체 가입자의 노후연금을 갉아먹는다. 전체 가입자의 3년 평균소득(A값) 증가율이 둔화돼 노후연금 증가율을 떨어뜨린다.

68세로 수령 시작 연령을 늦추는 것은 재정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가입자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33~2048년 65세에서 68세로 늘리자는데, 그때 가서 논의해도 될 일을 미리 공개해 반발을 살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입 상한 연령을 65세로 늘리려면 현재 60세로 고정된 법정 정년을 같은 방식으로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승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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