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기획단'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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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경제부에는 '기획단' 간판을 단 조직이 6개 있다. 모두 현 정부 들어 생겼다. 이들 기획단은 재경부 내 다른 국.실을 제치고 8.31 부동산 후속대책의 입안을 주도(부동산실무기획단)하거나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의 골격을 마련(조세개혁실무기획단)하는 등 굵직한 경제 정책들을 주도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규제개혁기획단은 지난 한 해 동안 아파트 발코니 확장 양성화 등 실생활과 밀접한 규제 완화 99건을 정책에 반영시키며 웬만한 부처보다 일을 많이 처리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산업자원부 원전사업기획단은 기획단의 위력을 보여준 조직이다. 지난 18년 동안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방폐장 후보지 선정 사업을 맡아 1년 만에 경주를 후보지로 선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5개 중앙부처 등의 직제.훈령에 따르면 이처럼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기획단은 현재 29개가 설립돼 있다. 추진단.지원단.사업단 등 비슷한 이름의 유사 조직까지 합하면 총 50개에 이른다. 이는 25개 부처 내 상설된 실.국(局) 168개의 29.8%에 달하는 규모다. 모두 노무현 정부 들어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획예산처는 아예 기존 '국-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행정조직 형태를 버리고 기획단을 정식 직제로 채택했다.

이 같은 변화는 현 정부 들어 정책 개발과 집행을 위원회와 행정부처로 이원화해 위원회가 정책 개발을 담당하도록 한 데 따라 나타난 후속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본지 2004년 7월 14~16일자 '위원회 정부시대' 시리즈>

여러 부처가 얽혀 있는 복합적인 정책을 개발하는 위원회를 뒷받침하는 조직으로 기획단 형태가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현 정부 들어 특정한 행정 수요를 담당하는 조직을 만들려다 보니 탄력적인 조직인 기획단이 많이 탄생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처럼 기획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다 보니 비슷한 기능의 조직이 겹쳐 행정력이 낭비되거나 직제에 없는 고위 공무원 자리만 늘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정부조직법 개정 없이 개별 부처의 훈령만으로도 부처 내에 기획단 조직을 신설할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조직 확대를 막기 위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획단과 같은 임시 성격의 조직이 일몰(日沒) 시한 없이 계속 운용될 경우 전체 조직이 오히려 방만하게 운영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정책의 총괄.조정 능력을 살리고 인사.예산관리 면에서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더욱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특별취재팀=홍병기(팀장).김종윤 차장,
김준현.김원배 기자(경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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