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중남미 자원민족주의의 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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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중남미의 자원 국유화는 1970년대에 유행했던 바와 같이 무조건 철수하라는 식의 외국 기업에 대한 자산 몰수는 아니다. 우선 정부는 다국적기업에 의해 생산된 자원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처분에 대한 권리를 회복한다. 그리고 로열티와 세금을 인상해 수익을 늘린다. 궁극적으로는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국적 기업의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입한다. 따라서 국유화의 핵심은 이익 분배에 있어 국가의 몫을 높이는 것과 함께 한쪽으로는 기업의 역할은 남겨두어 기술 및 자본 투자를 지속하게 하는 것이다.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요즘에는 대개의 경우 다국적 기업들이 정부의 개입에 크게 저항하지 않는다. 비용 상승폭보다 가격 상승폭이 높아 기업이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가 시대에 윈-윈 전략의 일종이라 할까. 2005년에 단행된 베네수엘라 석유 부문의 국유화는 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고,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정부도 유사한 방식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중남미의 이런 움직임은 고유가를 부채질한다는 점에서 에너지 수입국인 우리의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현상이다. 그러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삼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첫째,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외교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남북이 대치하던 시절부터 중남미는 우리의 전통적인 외교 파트너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왔고, 유엔 사무총장 선거 등 큰 외교적 사안에 대해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천연가스.주석 등을 보유한 볼리비아 같은 자원 부국에 우리 공관이 없다. 지난 경제위기 때 폐쇄된 공관을 조속히 다시 설치하고, 우리의 대외 원조를 늘려 볼리비아 진보 정권의 빈민 구제와 소득 불평등 해소 노력에 동참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에너지 문제는 강대국 중심의 외교 전략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둘째, 기업의 경우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장기적 안목에서 현지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기존의 다국적기업이 혹시 철수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신규 진출을 위한 준비 및 각종 정보 수집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 말레이시아 기업들은 이미 기회를 엿보고 있다.

셋째, 자원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기존의 다국적기업들은 철도.항만 시설 같은 생산 연계 시설에도 함께 투자하고 있다. 우리도 탐사와 개발.운송.인프라 프로젝트를 연계 수행하기 위해 관련 업체가 동반 진출,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최근 중남미 국가들도 넉넉해진 수입으로 건설 투자를 늘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로선 제2의 '중동 붐'을 중남미에서 노려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날 석유.천연가스 자원 부국들은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지금을 국가 발전의 기회로 여기는 경향이다. 따라서 자원전쟁 시대에 중남미 국가들이 국유화를 통해 지분 회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해 반발하기보다는 실용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남미 자원 확보와 우리 기업 진출에는 오히려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곽재성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