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세계 전문가들과 북한산 석탄 감별법부터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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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을 받는 벨리즈 선적의 진룽(Jin Long)호가 지난 4일 포항에 들어왔다가 러시아로 돌아간다. 정황상 이 배가 싣고 온 석탄은 북한산을 러시아산으로 속였으리라 보는 건 합리적 의심이다. 이럴 경우 해당 선박을 나포·검색·억류하도록 유엔 대북 결의는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어제 “검색 결과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수수방관할 뜻을 밝혔다. 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석탄 조사만으로는 산지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서류도 흠잡을 데 없이 꾸며져 있다면 출항을 막을 명분은 없다.

하지만 문제의 배를 조사한 뒤 “혐의를 못 찾았다”는 건 “북한산이 아니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판별 능력이 없다”는 무능함을 확인한 셈이다.

미국 측에 의해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 의혹이 불거진 건 지난해 10월 초다. 무려 10개월 전이다. 이후에도 의심쩍은 배 8~9척이 각각 수십 번씩이나 석탄을 싣고 국내 항구에 드나들었다. 그런데도 당국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사안의 중대함에 비추어 안이해도 이렇게 안이할 수 없다. 그러니 ‘의도적 묵인’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현재 당국은 국내 수입업자가 서류를 위조했는지, 디지털 감식 등을 통해 조사한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수출업체가 북한과 짜고 서류를 만들었다면 잡아낼 도리가 없다.

결국 미국 등과 손잡고 문제의 석탄이 북한산인지 아닌지 확실히 구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공위성으로 지상의 농구공만 한 물체를 구별하는 세상이다. 현대 기술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충 뭉개다 북한산 석탄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어쩔 셈인가. 유엔 결의 위반에 따른 책임을 피하기 위해 “북한산인 줄 몰랐다”고 발뺌할 수는 있겠지만, 땅에 떨어진 신뢰는 쉽게 회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