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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애플 제친 화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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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대륙의 실수’는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는 표현이다. 이 말이 나올 때 한국 경제는 이미 중국의 추격에 덜미가 잡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가시적인 위협을 보고도 낄낄대고 있으니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 주인공인 샤오미를 비롯해 신생 중국 기업들이 이제는 조롱의 대상에서 벗어나 세계 정상에 속속 올라서고 있다. 텐센트·알리바바는 세계 시가총액 ‘톱10’에 들 만큼 성장했다. 국내 1위 삼성전자는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영역이다.

중국 기업은 이제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울 참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듣보잡’이었던 화웨이(華爲)가 새 주인공이다. 화웨이는 올 2분기 ‘스마트폰의 원조’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 2위를 차지했다. 화웨이의 점유율은 15.5%로 1년 전보다 4.8%포인트 늘었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20.4%)와 애플(15%)은 2012~2013년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화웨이가 애플을 제친 것은 샤오미가 등장했을 때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이다. 샤오미가 2011년 8월 처음 스마트폰을 들고나왔을 때만 해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샤오미는 내부의 경쟁을 촉발하면서 중국 스마트폰 업체를 강하게 단련시켰다. 초기에 돌풍을 일으켰던 샤오미는 오히려 밀려나고 화웨이·오포·비보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삼두마차로 떠오른 것도 치열한 내부 경쟁의 효과가 컸다. 무엇보다 이들은 가성비를 공략했다. 삼성전자·애플이 고성능 스마트폰을 만들 때 중국 업체들은 기본 기능에 중점을 두면서 가격을 떨어뜨렸다.

그 비결은 창조적 모방이었다. 선진국 제품을 베끼되 중국의 현실에 맞춰 기능을 단순화하고 가격을 낮춘 것이다. 실용성에 강한 중국인들에게 더 잘 먹힐 수밖에 없는 전략이었다. 이는 중국이 공략하는 인도·아프리카 시장에도 그대로 먹혀들고 있다. 국민소득이 높지 않은 신흥국에서는 삼성전자·애플의 고가 스마트폰에 비해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선호한다.

얼마 전 중국에서 화웨이 본사를 방문해 경영 현황을 둘러보니 대륙의 실수라는 표현이야말로 오산이자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이 20%에 육박했고 경영 방식은 철저한 성과주의였다. 경영의 목표는 오로지 시장에서 요구하는 제품 개발이다. 화웨이는 “내년 말까지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잡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내 삼성전자 스마트폰 점유율은 1%를 밑돈다. 중국에선 이미 존재감을 잃은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을 어떻게 지켜낼지 지켜볼 일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