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김이 이용호에 건넨 회색 봉투, 설마 트럼프 친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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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 필리핀주재 미국대사가 4일 오후(현지시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포토세션이 끝난 뒤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다가가 서류봉투를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 [뉴스1]

성 김 필리핀주재 미국대사가 4일 오후(현지시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포토세션이 끝난 뒤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다가가 서류봉투를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 [뉴스1]

‘회색 봉투 안에 뭐가 들었길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싱가포르에서 4일 성김 주필리핀 미 대사가 이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봉투를 건네는 장면이 포착돼 궁금증을 자아냈다.

봉투 전달이 이뤄진 것은 이날 오후 엑스포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ARF 리트리트(비공식 자유 토론) 회의장이었다. ARF는 싱가포르에서 북·미 외교장관이 한 공간에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취재진의 관심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이용호가 접촉할지에 쏠렸다.

행사는 27개 ARF 회원국 장관이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 때폼페이오 장관이 이용호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고, 외신들은 이를 긴급 타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용호의 등을 두드리며 웃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4일 오후(현지시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먼저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있다. [뉴스1]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4일 오후(현지시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먼저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있다. [뉴스1]

예상치 못했던 더 놀 라운 장면은 직후에 나왔다. 포토 타임이 끝난 뒤 성김 대사가 이용호가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가 회색 서류 봉투를 건넨 것이다. 김 대사는 6·12 북·미 정상회담 전후로 북한과의 실무 협상을 이끌었고, 과거 북핵 6자회담에도 참여해왔기 때문에 이용호와는 구면인 사이. 김 대사가 봉투를 건네며 무엇인가 설명했고, 이용호는 무표정하게 이를 받아들었다.

봉투에 든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곧바로 확인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가 들어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번째 친서를 받았다고 공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에 답장을 썼고, 곧 전달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 현지시간으로 1일 싱가포르 등 동남아 순방을 위해 워싱턴을 떠났다.

외교부 당국자는 ARF 리트리트 직전 기자들과 만나 “공식적으로 준비해서 만나는 회담은 없어도 북·미 장관 간 조우의 기회는 있을 것 같다. 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통상 국가 정상의 친서를 전달하는 것은 특사 자격을 갖춘 인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회색 봉투 안에 든 것이 친서일 가능성은 작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친서가 맞다면 김 대사가 아닌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전달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또 봉투에는 백악관 문양 등이 찍혀 있지 않았고, 밀봉되지도 않았다. 이용호가 자리에 앉아서 곧바로 내용물을 확인하는 모습도 포착됐는데, 정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내는 친서라면 중간에서 이를 열어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외교가의 해석이다. 김 대사가 북핵 협상을 이끌고 있는 점으로 미뤄 후속 협상과 관련한 내용물이 들어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다음 방문지인 인도네시아로 이동한다. 이용호는 오후 뉴질랜드와의 양자회담 등 다른 일정이 추가로 예정돼 있어 북·미 장관이 만날 기회는 더이상 없을 전망이다. 이번 ARF를 계기로 정부도 남북 외교장관 회담을 추진했지만, 북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싱가포르=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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