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0년대 농촌 실태 파헤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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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7년 전쯤 어느 날 고대내의 연구실에서 평소 알던 최 교수님을 만나 그의 향후 10년간의 연구·집필 계획을 들은바 있다. 그 연구실의 한쪽벽면에는 커다란 칠판이 걸려 있었고 1980년대 10년간의 최 교수님의 집필계획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우선 그 연구계획의 방대함과 치밀성에 놀랐다. 그 속에는 한국 가족 제도사 연구를 위시하여 한국 고대사회사 연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칠판에 씌어있던 그 책제목들은 순서대로 이미 출판되었다.
최재석 교수는 가족·친족연구, 농촌사회연구를 중점적으로 한다고 생각되었으나 근년간에는 한국사회사 연구에도 매우 몰두하였던 것 같다. 그런가했더니 이번에는 이전의 연구과제로 돌아와『한국 농촌사회 변동연구』를 내놓았다. 이 저서도 7년 전의 그 칠판의 계획대로 착오 없이 집필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농촌사회연구는 소문난 잔칫집의 잔칫상에 비유될 수 있다. 농촌사회를 발전시킨다는 70년대의 그 거창한 운동과 때를 맞추어 각 대학마다 농촌과 새마을 관계연구소들이 설립되었고 수도 없이 많은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글들 중 몇 편이나 우리농촌의 구조와 변동을 설명하기 위한 학문적 축적물로서 가치가 있을 것인가? 최 교수님의 이번 저서는 60∼80년대의 농촌실정을 기록해 놓은 산 증거로서 가치가 있다.
『교과서를 쓸 시간이 없다. 연구 논문 발표하기에 바빠서』라고 말하는 저자는『구체적인 한 농촌사회의 구조적 변동의 전반에 관한 자료의 축적, 보관』이라는 측면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인 농촌을 수없이 많은 가구가 떠났고 또 단신으로 이촌하는 상황 속으로「그 가난한 자들이 다시 입촌하는가? 그 처참한 정황을 과학적·실증적으로 기록해 놓기를」저자는 바랐다고 했다. 이 책은 지난 20년간 이 마을을 살고 떠난 55가구와 새로 들어온 19가구의 눈물 젖은 기록이다.
전북 임실군의 한 부락 77가구의 상황을 15장에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이 책 목차를 펴놓고 저자는「이촌과 농지소유」부분을 특별히 지목했다.『글쎄 농촌주민이 농지소유 의욕이 없어요. 토지소유자는 임차인을 찾느라 애쓸 지경이에요.』
쉰 듯한 목소리의 최 교수는 조사부락의 농지 임대차에 얽힌 기현상을 놓고 한숨을 쉬었다.
농민의 사회적 성격의 한가지로 토지에의 애착을 강조하던 종래의 설명이 과연 바꿔는 것일까? 이 나라 구식구석의 땅까지 훑고 다니는 토지투기꾼이 교묘히 위장하고있는 측면은 없을 것인가? 우리 나라는 60년대 이후의 공업화추진이래 농촌·도시 모두 급격한 변동을 겪어오고 있다.
농촌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발전과 이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의 편입과정에서 줄곧 농업·농촌의 희생이 강요되었다.
특히 80년대의 개방농정은 한국경제의 지속적 고도성장을 위한 수출 촉진책으로서 농산물수입을 필요로 하게됐고 이는 저 농산물 가격유지를 성공시켰으나 농촌의 막대한 희생을 가져왔다. 복합영농이니, 농촌공업화니 하는 허울좋은 정책은 실패를 거듭하는 미봉책일 뿐이다. 노인과 부녀자수가 월등 많은 농촌, 총각이 장가들 수 없는 농촌, 이러한 농촌실정을 최 교수님은「지방사의 자료 축적이라는 것을 부차적으로 의도하면서」 생생히 기록한 것이다.
『농촌 사회변동을 보는 시각문제를 제기하고 싶은데요. 이촌현상을 변화요인으로 보고 계신데…·』하고 말을 꺼내봤다. 최 교수의 기다렸다는 듯한 대답은『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연구의 효율성과 체계성을 고려하여 이촌으로 인한 농촌사회구조변화에 한정해서 미시적으로 부락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전체 사회구조의 변화에 조응하는 농촌사회변동 연구는 후학들에게 맡겨진 과제이리라. 이번 최 교수님이 조사했던 동일 부락에 대한 10년, 20년 후의「추후조사」작업은 우리에게 남겨지는 작업일 것이다.
김 주 숙(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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