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쇼크에 다급해진 김동연, 삼성 찾아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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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쇼크’에 ‘투자 절벽’까지 덮치나…설비투자 18년만에 최장 감소  

‘투자 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설비투자가 18년 만에 4개월 연속 줄었고, 감소 폭도 가파르다. 설비투자가 위축된다는 건 기업이 미래 먹거리를 찾기보다 '방어 경영'에 급급하다는 뜻이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급히 기업에 손을 내밀었지만 정작 투자의 장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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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31일 내놓은 ‘6월 산업활동동향’은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가 모두 녹록지 않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6월 전체 산업생산은 한 달 전보다 0.7% 줄었다. 3월(0.9% 감소)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6월 설비투자 5.9% 감소…4개월 내리 줄어 #정부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 3.3 → 1.5%로 낮춰 #다급한 정부 대기업에 투자 독려 'SOS' 쳤지만 #"정부 정책에서 투자 유인책 찾기 어려워"지적

더 암울한 건 미래 성장 동력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투자 지표다. 6월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5.9% 감소했다. 지난 3월부터 4개월째 투자가 줄고 있다. 설비투자가 4개월 내리 감소한 건 2000년 9~12월 이후 처음이다. 2분기 설비투자는 1분기보다 10.8%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13.2% 감소)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감소 폭을 보였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투자 감소 이유에 대해 “2016년 4분기부터 진행된 주요 반도체 업체 설비 증설이 올 1분기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투자의 주체인 기업이 투자를 꺼린다는 점이 꼽힌다. 7월 기업 체감경기가 1년 5개월 만에 가장 나쁠 정도로 경기를 바라보는 기업의 인식이 어둡다. 삼성전자의 분기별 영업이익 신기록 행진이 올 2분기에 7분기 만에 멈춰서는 등 주요 기업의 실적에 노란불이 켜지면서 체감 경기도 악화하고 있다. 기업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면 투자를 줄이고 지갑을 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정부 정책이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정부의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 개입,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기업이 미래 먹거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향후 투자 전망도 흐릿하다. 정부는 최근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을 1.5%로 예상했다. 지난해 12월 전망치(3.3%)보다 크게 낮다. 올 1분기 설비투자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7.3%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나머지 기간의 설비 투자 증가율은 사실상 뒷걸음질 친다는 얘기다. 이는 향후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판을 닫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브리핑실 앞에서 출입기자들과 경제현안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삼성 방문 계획을 밝혔다. [뉴습]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브리핑실 앞에서 출입기자들과 경제현안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삼성 방문 계획을 밝혔다. [뉴습]

고용에 이어 투자까지 얼어붙자 다급해진 정부는 대기업에 ‘SOS’ 신호를 보냈다. 문재인 정부 ‘경제 컨트롤타워’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월 초에 취임 이후 처음으로 삼성을 방문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회동할 가능성이 크다. 김 부총리는 지금까지 대기업 총수 중 구본준 LG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만났다. 이들 기업은 김 부총리와 회동한 날 대규모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대기업의 ‘일회성 선물’로는 투자 부진 흐름을 돌리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대기업에 투자ㆍ고용을 독려하려면 먼저 정부가 투자 유인책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올해 세법개정안에서도 근로ㆍ자녀장려금(EITC) 확대와 같은 분배 정책, 부동산 보유세 강화와 같은 자산가 대상 ‘핀셋 증세’만 보일 뿐 투자를 이끌 방안을 찾기 어렵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대기업 총수와의 만남과 같은 이벤트로는 투자 부진을 극복할 수 없다”라며 “투자를 실질적으로 유도하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의 궤도를 틀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표 교수는 “기업 규모를 불문하고 투자를 하는 기업에 대해선 화끈하게 세제 혜택을 주고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도 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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