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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컵 못쓰는데...동네카페 "점심 때 150잔 설거지 누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0일 서울시내의 한 카페에서 고객들이 일회용컵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다. 김정연 기자

30일 서울시내의 한 카페에서 고객들이 일회용컵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다. 김정연 기자

30일 서울시청 인근의 한 카페. 15개 테이블 중 14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일회용 컵에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이진기(34)씨는 "어차피 30분도 못 돼 회사에 들어가봐야 해서 일회용 잔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여의도 한 카페에서도 손님 10테이블 중 2곳만 유리잔을 사용하고 있었다.

1일부터 매장 내 사용 제한 #"최저임금 올라 알바도 쓰기 힘들어"

환경부는 8월 1일부터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시행 시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소규모 카페의 준비는 미흡하다.

30일 서울시내 카페에서 사용된 일회용컵의 모습. 당장 1일부터 실내 일회용컵 사용이 금지된다. 김정연 기자

30일 서울시내 카페에서 사용된 일회용컵의 모습. 당장 1일부터 실내 일회용컵 사용이 금지된다. 김정연 기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지난 5월 24일 환경부와 ‘1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맺고, 텀블러 사용 시 혜택 제공, 다회용컵 권유 등을 시행해왔다. 그러나 ‘매뉴얼’이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들과 달리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들은 스스로 대응방안을 찾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서소문동 카페 사장 고모씨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손님이 ‘금방 나갈 거니 플라스틱 컵 달라’고 한 뒤 착석해도 방법이 없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여의도 한 카페 사장 윤모(42)씨는 “구청에서 공문 외에 따로 교육을 나온다고 하는데 나온 적은 없고, 아직 혼란스럽다”며 "위반 시 사업장만 과태료를 내는 건데 협조가 잘 될까 싶다"고 말했다.

"설거지할 틈 없고 일손 부족 걱정" 

피크 시간 ‘반짝 장사’에 지장이 있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충무로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32)씨는 “대기업 인근이라 점심 피크시간에 100잔~150잔을 파는데, 설거지 할 틈도 없고 일손이 부족해지면 매출이 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에서 카페 매니저 일을 하는 방모씨는 “여의도 점심시간은 현실적으로 ‘플라스틱컵 아웃’이 너무 어려워서 8월부터는 종이컵에 낼까 생각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마포구 카페 사장 최모(35)씨는 “음료 제조 시간 절약을 위해서도 투명한 플라스틱 컵이 좋다”며 “1인 가게는 머그잔에 음료 옮기는 일 하나 더해지는 것도 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카페에 있는 안내문구. 8월1일부터 실내에서 일회용컵 사용이 금지된다는 내용이다. 김정연 기자

서울시내 한 카페에 있는 안내문구. 8월1일부터 실내에서 일회용컵 사용이 금지된다는 내용이다. 김정연 기자

정부의 급격한 제도 시행에 불만을 호소하는 업주도 있었다. 서울 명동 한 카페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아예 공문도 받지 못했다"며 “시행을 할 거면 고지‧교육 등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나. 카페만 환경 파괴 주범으로 만드는 모양새는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고객들도 플라스틱 용품 선호" 

마포구 카페 사장 최모(35)씨는 “최저임금도 오르고, 이래저래 돈 들 일이 많아서 골치 아프다. 인건비 때문에 아르바이트생 근무를 줄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방침과는 다르게 플라스틱을 찾는 손님이 많은 것도 걸림돌이다. 서소문동 카페에서 일하는 최아라씨는 ‘플라스틱 아웃’ 취지에 맞춰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려 시도해봤지만 "손님들이 '플라스틱 빨대로 달라'고 요구해 다시 바꿨다”고 소개했다.

마포구 카페 사장 박모(38)씨도 “안내 공고를 붙여놓긴 했지만, ‘당신이 일회용품 쓰면 내가 과태료 내’ 라고 말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며 “홍보가 많이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 유리잔을 제안하거나 ‘플라스틱 컵은 들고 나가셔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머그컵 위생 걱정된다"  

소비자들도 아직 익숙하지 않다. 위생이 걱정된다는 반응도 나온다. 직장인 이모(55)씨는 “일회용컵 안내를 받긴 했지만 머그는 불편하고, 위생적인 면도 걱정된다”며 일회용컵에 담긴 커피를 마셨다.

정책 시행 전 이런 우려들에 대해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회용컵 대신 개인 컵을 쓰게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금액 할인 같은 인센티브 정책과 홍보를 통한 문화 운동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정부에서 실태조사를 할 때 머그컵을 비치하고 세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매장과 그렇지 못한 매장을 구분해 접근했어야 한다"라며 "과태료를 바로 부과하면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일회용품 사용에 보증금 매기던 게 사라지면서 플라스틱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약간 불편하더라도 이런 플라스틱 소비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다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혼란을 줄이기 위한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장 민원을 반영해, 환경부가 1일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매장 내 일회용컵 과태료’ 부과는 잠시 미뤄져 다음 주쯤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30일 “7월 한 달 현장점검 결과 일선 카페들의 민원 사례가 많아, 8월 1일 시도 담당자 간담회를 통해 의견 수렴 후 과태료 부과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연·이태윤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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