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청산 늦추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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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의 4당대표연설이 5공 비리의 청산과 마무리에 역점을 둔 것은 당연하다.
국정감사에서 수많은 5공의 비리와 의혹이 적발, 추궁되었지만 대부분 문제의 소재와 윤곽만 밝혔을 뿐 그 보상을 파헤치고 법적·정치적 처리와 매듭을 짖는 일은 정작 이제부터 할 일이기 때문이다.
대표연설을 보면 비리척결에 관한 한 여야의 입장은 표면상 크게 다를 바 없다. 민정당도 단호한 척결을 다짐했는데 과연 말대로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야당들은 한 걸음 나아가 ▲대통령이 직접 청산작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야당들은 정부의 척결노력이 미흡할 경우 특별검사제의 신설을 포함한 특별입법,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 청문회 등 국회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할 뜻을 밝히고 있다.
정치권의 이런 요구는 당연하다고 본다. 국정감사가 끝났다고 하여 5공 청산작업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각 정당은 대표연설에서 밝힌 대로 정부의 조치를 주시, 독려하면서 5공 특위 등 국회로서의 활동도 더욱 강화해 나가야할 것이다.
앞으로 대정부 질문, 예산심의 등으로 국회의 일정이 바쁘지만 5공 특위를 병행 가동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기적으로도 청산작업이 늦어지지 않도록 여야는 각별히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대표연설에서 야당 측은 5공 청산에 대한 정부측의 자세에 따라 정국협력여부를 결정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청산을 요구하는 어조도 전보다 강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보아 앞으로의 정국 순항여부도 5공 청산작업에 달려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 여당으로서는 스스로 누차 말해온대로 이 문제에 더 이상 소극적인 자세로 임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대통령도 이제는 단안을 내릴 때가 왔다고 본다. 국민과 야당이 기대를 걸고 결과를 기다리게 할 수 있도록 올림픽이전의 엉거주춤하던 자세와는 다른 적극적이고도 단호한 조치를 실증해 보여야 한다. 그리고 5공의 보다 확실한 청산과 민주화의 토대 마련을 위해 각종 권위주의적 지배 구조의 정리와 인사개편을 단행하라는 야당의 촉구도 정부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 체제의 제도 운용방식과 그런 방식에 익숙한 공직자들을 그냥 둔 채 민주화를 하고 5공을 청산한다는 것은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말만으로 끝나기 쉽다.
야당 측은 연설을 통해 보안법·사회안전법 등 각종 악법의 개폐를 요구하고 안기부·보안사 등의 민주화·중립화 등도 요구했는데 이런 일은 정부가 추진할 일이라고 하지만 실은 국회도 서둘러야 할 일이라고 본다.
국회에 악법 개폐 특위가 설치된 지 오래고, 여야간에 개폐의 원칙에 의견을 같이 하는 악법도 수두룩하지만 정치권의 더딘 행보로 여태껏 개선의 실적이 없다. 올림픽·국정감사 등 바빴던 정치일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연설로 촉구할게 아니라 이제는 각 정당이 스스로 국회에서 빨리 팔을 걷어붙이고 입법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 대표연설은 처음으로 TV로 생중계 됐다. 그런 만큼 국민의 관심도 전보다 높았고 연설의 무게도 더 있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연설내용을 보면 생중계를 의식한 탓인지 다분히 나열식의 언급이 많았던 것 같고, 과거를 정리하는 바탕 위에 나와야 할 미래지향적인 구상의 제시를 별로 볼 수 없었음이 아쉬웠다.
그리고 지자제 실시방안·구속자 석방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간 상당한 이견을 보여 그런 문제를 불가피하게 다뤄야 할 앞으로의 정국을 다소 우려하게도 된다.
대표연설로 밝힌 4당의 의지, 특히 5공 청산의 의지가 어떻게 구체화해 나갈지 주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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