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에서 번 돈 실생활서 진짜로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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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프로젝트 엔 트로피아'의 배경인 가상공간 '칼립소'의 한 도시

가상공간의 부동산에 진짜 돈을 투자하고, 거기서 번 돈을 현실세계의 현금지급기에서 찾아 쓸 수 있는 온라인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BBC 방송 인터넷판이 2일 보도했다.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프로젝트 엔트로피아'는 게이머들이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찾아 쓸 수 있는 현금카드를 선보였다. 개발업체인 스웨덴의 마인드아크사는 "이제는 게이머가 게임 속에서 생산한 각종 아이템을 필요한 사람에게 판 뒤 그 대금을 곧바로 인출해 현실세계에서 저녁을 사먹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금카드의 등장으로 가상공간과 현실세계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게 됐다. 이 게임에서 쓰이는 게임머니인 '프로젝트 엔트로피아 달러(PED)'는 미국 달러와의 교환 비율도 정해져 있다. 현재 환율로 치면 10PED는 진짜 돈 1 달러(약 930원)로 바꿀 수 있다. 게이머들은 진짜 돈을 가상 화폐인 PED로 바꿔 가상공간에서 필요한 곳에 쓰거나 투자할 수 있다.

◆ 게임머니를 현금으로=마인드아크사가 선보인 현금카드는 게이머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가상공간의 계좌와 연결돼 있다. 현실세계의 은행 계좌와 유사하다. 현금 인출.이체.예금을 할 수 있으며 잔액 조회도 가능하다. 게이머는 이 계좌에 있는 가상화폐 PED를 가상 또는 현실에서 선택적으로 인출해 사용할 수 있다. 가상공간에 투자할 수도 있고, 인출기에서 현금으로 찾아 실제로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가상공간과 현실세계가 경제체제를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엔트로피아' 게임공간에서 1억6500만 달러가 거래됐으며, 올해는 두 배 이상 늘 것으로 예상된다.

◆ 가상세계에서 돈 벌기=게임은 '엔트로피아 유니버스'라는 가상공간에 있는 '칼립소'란 행성을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 게이머들은 아바타(인터넷상에서 자기를 대신하는 분신적인 의미의 캐릭터)를 내세워 활동한다.

게이머들은 PED로 가상공간 속에서 의식주 해결은 물론 부동산 투자도 한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돈도 벌 수 있다. 돈 버는 방법은 현실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의 대가를 받거나 부동산 투자 수익을 올리고 사업도 한다. BBC는 이 같은 게임으로 진짜 돈을 벌어 생활하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마이애미에 사는 게이머 존 제이컵스는 진짜 돈 10만 달러(약 9300만원)를 투자해 가상공간에 매물로 나온 우주 정거장을 샀다. 그는 가상공간 속에서 우주 정거장을 종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로 탈바꿈시킬 계획으로 쥐라기 공원 같은 공룡 테마파크와 호텔.쇼핑몰.사냥터.나이트클럽을 짓고 있다. 그는 "현실세계의 부동산 시장이 다소 정체된 반면 가상세계의 부동산 시장은 지금이 붐을 이루고 있다"고 매입 동기를 밝혔다. 그는 리조트가 완성되면 한 해에 적어도 168만 달러의 수입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앞서 2004년 12월 가상의 섬을 2만6500달러에 산 호주의 게이머 데이비드 스토리는 1년 만에 자신이 투자한 돈을 전부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곳에 가상의 집을 지으려는 게이머들에게 땅을 분양하고 섬에서 사냥이나 채굴 작업을 하려는 이들에게 세금을 걷기도 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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