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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트렌드 타고, 날로 진화하는 ‘모션베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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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93년 한 침대회사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광고로 화제를 일으켰다. 침대의 외형보다는 편안한 숙면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력에 집중하라는 이 광고 카피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지금도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등받이를 올려 TV 시정을 쉽게 만드는 모션베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에르고 슬립]

등받이를 올려 TV 시정을 쉽게 만드는 모션베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에르고 슬립]

최근 침대의 정의가 다시 정립됐다. 이제 침대는 수면을 위한 도구에서 한 단계 나아가 ‘휴식의 도구’임을 강조한다. 편안한 수면도 중요하지만 휴식 공간으로 침대를 활용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침대 기술도 다르게 진화 중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움직이는 침대 '모션베드'다.
모션베드는 전동장치를 사용해 자동으로 매트 상체나 다리 부분이 아래위로 움직이도록 만든 침대다. 리모컨으로 작동시키는 게 보통이지만,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폰 앱이나 목소리로 작동시키는 모델도 출시됐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등받이가 스르륵 올라와 앉은 자세로 책을 읽거나 TV를 볼 수 있다. 반대로 아래쪽을 올리면 퉁퉁 부은 다리를 위로 들어 올려 인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무중력 상태 '제로지 포지션' 자세를 취하게 한다.

2016년 홈쇼핑에 처음으로 모션베드 상품을 내놔 눈길을 끈 '체리쉬'의 모션베드. [사진 체리쉬]

2016년 홈쇼핑에 처음으로 모션베드 상품을 내놔 눈길을 끈 '체리쉬'의 모션베드. [사진 체리쉬]

최근 국내 침대시장에서 모션베드의 인기가 뜨겁다. 2016년 300억 원대였던 모션베드 시장 규모는 2017년 1000억원대로 1년 만에 3배 이상 성장했고, 1조원으로 추정하는 국내 침대 시장의 10%를 차지했다. 침대에 집중하는 템퍼·시몬스·에르고 슬립부터 일룸·한샘·에몬스가구·체리쉬·바디프랜드 등 많은 회사가 앞다퉈 모션베드를 내놓고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업계에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또 집에서 즐기는 휴식을 중요시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때문에 앞으로도 성장세는 계속 될 것으로 전망한다.
사용층은 30대 초반 신혼부부와 싱글 남녀 등 주로 젊은 세대다. 지난해 12월 '한샘'의 모션베드를 혼수로 장만한 30대 주부 서영윤씨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기에 편할 것 같아 구매했는데, 실제로 써보니 출산 후 모유 수유할 때도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미혼 남성인 하승재(40)씨도 얼마 전 이사하며 침대를 모션베드로 바꿨다. 영업직인 하씨는 "집에서 더 편하게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다른 가구 살 비용을 아껴 모션베드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모션베드의 시작은 의료용 침대였다. 1900년대 초반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의과대학 교수였던 윌리스 갯치 박사가 환자를 위해 머리·다리 부분을 조절할 수 있는 침대를 만든 게 시초다. 가정용 모션베드는 여기서 필요한 몇 가지 기능만 따오고 두꺼운 라텍스나 폼 매트리스를 결합한 것으로 보면 된다. 미국에선 이미 90년대부터 일반 가정에서 사용됐다. 사실 모션베드란 이름은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이름이다. 해외에선 조절 가능하다는 의미로 '어드저스터블 베드'(Adjustable Bed) 또는 개발자의 이름을 따 '갯치 베드'(Gatch Bed)라고 부른다.

리모컨·앱으로 등받이·높이 조절 #책 읽고, TV보고 젊은층에 인기 #'소확행' 트렌드 타고 값도 떨어져 #"척추·허리에 좋다" 아직 입증 안돼

 일룸은 2016년 모션베드를 출시하며 당시 드라마 '도깨비'로 인기가 높은 배우 공유를 모델로 내세웠다. [사진 일룸]

일룸은 2016년 모션베드를 출시하며 당시 드라마 '도깨비'로 인기가 높은 배우 공유를 모델로 내세웠다. [사진 일룸]

국내엔 200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소개됐다. 2011년부터 모션베드를 판매한 ‘템퍼 실리 인터내셔날’의 김새암 마케팅팀 과장은 "2015년부터 모션베드 매출에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템퍼는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모션베드의 가능성을 보고 매장 전면에 모션베드를 내세워 전시해왔다. 국내 모션베드 유통·제작사인 '에르고 슬립'은 2년 앞선 2013년부터 미국의 대형 모션베드 장치 전문회사 '에르고 모션'에서 모션베드 프레임을 수입해 국내 실정에 맞는 유럽과 국내산 매트리스 8종류를 조합해 판매해 왔다. 조대성 에르고 슬립 마케팅팀장은 "모션베드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피어오를 때 일룸이 시장에 불을 붙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500만~700만원 대의 높은 가격과 생소한 쓰임 때문에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모션베드는 2016년 '일룸'(퍼시스 그룹)이 제품을 출시하며 갑자기 붐이 일었다. 2008년부터 의료용 침대를 개발·생산하던 그룹 내 '퍼시스 케어'의 노하우를 활용해 한국인 체형에 맞춰 가정용으로 개발한 침대였다.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일룸은 저가 정책과 스타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펼치며 시장을 견인했다. 200만원 대 내외의 상품을 내놓으며 문턱을 낮췄고, 당시 드라마 '도깨비'로 인기 고공행진 중이던 배우 공유를 모델로 내세운 게 제대로 적중했다. 이후에도 여러 드라마에서 PPL로 침대를 보여주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고, 지난해 말 제품 출시 1년4개월 만에 1만대 이상의 판매 성적을 거뒀다.
같은 해 모션베드를 출시한 '한샘'과 '체리쉬'도 판매량이 계속 늘어 올해 월 평균 판매량은 전년 대비 100% 이상씩의 성장세를 보인다.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모션베드 '피졸로'는 지난 5월 말 처음 선보인 홈쇼핑 방송에서 80억원 어치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템퍼가 촬영한 광고 이미지를 보면 모션베드에서 이들이 강조하는 점이 '휴식'인 걸 눈치챌 수 있다. [사진 템퍼]

템퍼가 촬영한 광고 이미지를 보면 모션베드에서 이들이 강조하는 점이 '휴식'인 걸 눈치챌 수 있다. [사진 템퍼]

인기는 높지만 아직 모션베드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특히 모션베드가 허리나 척추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오해가 많다. 이성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허리 건강과 연결할 만한 모션베드 임상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며 "디스크 등 척추나 허리 건강에 문제를 해결할 용도로 구매하면 안 된다"고 했다. 움직임을 도와주니 몸을 일으키거나 휴식하기 편한 자세를 잡아줄 순 있지만 이게 허리에 꼭 좋은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허리 건강은 알맞은 매트리스 선택과 더 관련이 깊다.
일룸의 김병호 모션가구 개발팀장은 "휴식의 질을 높이는 게 모션베드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치료나 건강 증진의 목적보다는 휴식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는 얘기다. 김 팀장은 "오랜 시간 수면할 때는 올렸던 등받이와 다리를 다 내려 편평한 상태로 만드는 게 낫다"고 권했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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