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오픈] 골프 성지 세인트앤드루스 얕보는 카누스티 골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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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디 오픈 3라운드가 열린 22일 카누스티 골프장 18번홀 러프에서 샷을 하는 타이거 우즈. [UPI=연합뉴스]

디 오픈 3라운드가 열린 22일 카누스티 골프장 18번홀 러프에서 샷을 하는 타이거 우즈. [UPI=연합뉴스]

23일 새벽(한국시간) 끝난 제147회 디 오픈 챔피언십이 열렸던 카누스티 골프장은 ‘골프의 성지’ 세인트앤드루스의 이웃 클럽이다. 테이 강을 건너 눈에 보이고, 차로는 약 40분 거리다. 두 클럽 회원들은 매년 매치플레이 경기를 한다.

제 147회 챔피언십 열린 골프장 #강 사이에 둔 라이벌 두 코스 #카누스티는 전장 길고 선 굵어 #올드 코스는 오밀조밀 여성적

카누스티 사람들은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에 대해서 “여자 대회나 해야 적당한 코스”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까마귀(crow)의 둥지(nest)에서 유래했다는 카누스티는 남성적인 코스다. 카누스티의 시원하게 뻗은 페어웨이와 전략적으로 배치된 벙커, 선이 굵은 워터 해저드는 오밀조밀한 올드 코스와 대비를 이룬다.

올해 디 오픈을 치른 카누스티의 전장은 파 71에 7402야드였다. 2015년 디 오픈 개최 당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파 72에 전장이 7297야드였다. 짧은 코스를 억지로 늘리다 보니 기괴한 모양이 나왔다. 카누스티는 1953년 대회에서도 전장이 7300야드나 됐다. 원래 크고 장대한 코스다.

카누스티는 두 홀 이상 똑같은 방향으로 홀이 진행되지 않는다. 선수들은 거의 매 홀 다른 방향에서 부는 바람과 싸워야 한다. 카누스티 클럽의 전 캡틴인 앨릭스 브라운은 “올드 코스는 직선으로 갔다가 직선으로 돌아오는 매우 단조로운 코스다.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의 다른 코스도 올드 코스의 모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코스 난이도도 차이가 크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디 오픈이 열리는 링크스 중 가장 쉬운 편이다. 이에 비해 카누스티는 가장 어렵다.

골프 코스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마지막 홀도 차이가 크다. 올드 코스의 18번 홀은 전장 365야드에 불과하다. 페어웨이 우측의 OB 구역을 제외하면 함정도 없는 싱거운 홀이다. 메이저 대회 코스의 피니시 홀 중 가장 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카누스티의 15~18번 홀의 마지막 4개 홀은 지뢰밭이다. 특히 마지막 홀은 많은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골프에서 가장 유명한 홀 중 하나로 꼽힌다.

카누스티 18번 홀은 넓은 개울을 3번이나 가로지른다. 티샷이 오른쪽으로 쏠리면 해저드에 빠지게 돼 있다. OB 선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페어웨이 왼쪽 편은 더 위험하다. 페어웨이에도 벙커들이 입을 벌리고 있어 거리도 딱 맞춰야 한다. 카누스티의 벙커는 깊지는 않지만, 좁고 턱이 있어 스윙하기가 쉽지 않다. 벙커에 들어가면 무조건 한 타를 잃는다고 봐야 한다. 18번 홀에선 세컨드샷도 쉽지 않다. 그린 바로 앞에도 해저드가 있고, 왼쪽으로 당겨치면 OB가 나게 된다.

골프계에서는 카누스티를 ‘카네스티(Car-nasty)’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nasty’는 ‘끔찍한’ ‘위험한’ ‘못된’ 이란 뜻을 가진 영어 단어다. 이번 대회에는 로리 매킬로이 등 몇몇 선수들이 발바닥에 nasty라고 쓰인 신발을 신고 나왔다.

역사도 남부럽지 않다. 1842년 개장한 카누스티는 15세기에 문을 연 올드 코스보다는 짧지만, 골프 코스 가운데 역사가 유구하기로 ‘톱10’에 든다. 카누스티 출신의 프로 골퍼들이 스코틀랜드를 떠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골프를 전파했다. 미국·캐나다·호주의 프로골프협회 창시자들이 이곳 출신이다.

세인트앤드루스가 아마추어 골퍼들의 성지라면, 카누스티는 전 세계 프로골퍼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올해 카누스티는 발톱을 드러내지 못했다. 스코틀랜드에 몇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러프가 자라지 못했다.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았고 2라운드에 내린 비로 그린은 부드러웠다. 카누스티의 방패인 벙커, 개울, 러프, 바람 중에서 2개가 실종됐다. 바람이 없으니 벙커와 개울도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영국의 방송 해설자는 카네스티가 ‘카나이스티(Car-nice-ty)’가 됐다고 했다. 끔찍한 골프장이 친절한 골프장이 됐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역대 대회보다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1999년 카누스티에서 열린 디 오픈 우승자의 스코어는 합계 6오버파였다. 올해 대회에서는 3라운드까지 언더파가 39명이나 됐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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