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칼럼

한국의 섬나라 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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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욕하면서 닮는다더니 일본의 섬나라 근성을 요즘 한국에서 보는 것 같다. 하긴 한국도 지리적으로 따지고 보면 사실상 섬나라와 다를 바 없다.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라고는 하지만 북쪽이 50년 이상 철조망이 쳐진 금단의 땅임을 감안하면, 고립의 정도로도 섬나라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게 없다. 그래서인가, 어떤 때는 우리가 일본 뺨칠 정도로 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

굳이 일본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람 역시 개방적, 타협적, 국제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대원군 시대의 쇄국정책이 그랬고, 중국 화교가 한국 땅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것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유난한 민족인지 대충 알 만하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라 하는데 국민의 개방성향이나 태도로 말하면 몇십 등에 자리할지 모르겠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개방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더 거칠고 심해졌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적극 개방이 갈수록 절실한데, 정치나 사회적 분위기의 향방은 반(反)개방 물결의 역류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의 개방 실적을 돌이켜봐도 자발적인 게 별로 없다. 금융위기 때의 대폭적인 개방도 강제 개방이었다. 개방 과정에서 부작용도, 아쉬움도 많았고 국제적으로 비싼 비용을 치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개방 덕분에 국가부도를 면했다. 도리어 미리미리 개방해 왔더라면 그런 수모를 안 당했을 것이다.

금융위기를 겪은 지 10년. 그간의 개방정책이 뿌리를 내리기는커녕 엉뚱하게도 지금 와서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소버린.뉴브리지.론스타 같은 외국자본들이 형사적 유.무죄와는 상관없이 이미 '악의 축' 같은 존재로 각인되어 버렸으며, 당시 관련 책임자들은 새삼 법의 심판대에 올려지고 있다. 검찰과 감사원은 이참에 본때를 보이겠다며 서슬이 퍼렇다. 각광받던 부실기업 전문회사들이 하루아침에 죄인 취급을 받는가 하면, 외국기업을 의뢰인으로 하는 법률회사들까지 매국집단으로 몰아대는 판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상대가 미국이든 일본이든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은 다 글러 먹은 것 같다. 협상이 제대로 되지도 않겠지만 설사 성공시켜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치판이 하루아침에 뒤엎을 텐데. 리더십으로 합의를 끌어내기는커녕 들쑤셔서 분란만 더 부추기는 장본인이 한국의 정치인이니 말이다. 외국자본에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데는 여야도 없고, 좌우도 없다. 정치인만이 아니다. 언론 또한 그들이 침소봉대한 내용을 앞다퉈 쟁점화하면서 풀무질을 하는 데 선수다. 시민단체나 농민단체.노동세력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설지는 불문가지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일까. 이런 추세라면 갈 때까지 가봐야 알 것 같다. 그전 같으면 대통령이 나서건 누가 나서건 그때그때 교통정리가 되고 제동도 걸고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다. 의견이 다르고 갈라지면 댓바람에 삿대질하며 싸움할 줄만 알지, 말리는 사람도 중재하는 사람도 없다.

폐쇄주의의 원조, 일본을 보자. 일본은 얄미울 정도로 잘한다. 섬나라 근성이라고 비웃음을 당하지만 자기들끼리 뭉치는 데는 도가 텄다. 일본 정치인이 망언이나 일삼고 영어도 못하는 핫바지처럼 보일지 몰라도 국민 사이의 합의 도출 기술은 세계 1등이다. 섬나라 근성이라는 열등감까지도 합의 도출의 강력한 에너지로 삼을 줄 안다. 수도 없이 강제개방을 당했지만 오히려 그걸 계기로 지금의 경제대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가. 어떤 합의 도출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