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차에 아이 방치해도 과태료 20만원..."사고 원천 차단할 제도 마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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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기 동두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50분께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어린이집 차 안에서 A(4·여)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17일 경기 동두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50분께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어린이집 차 안에서 A(4·여)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폭염 속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 갇혀있던 4살 어린이가 숨진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정부의 솜방망이 대처가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7일 오후 경기 동두천시의 한 어린이집 앞에 주차된 통학 차량 뒷자석에서 원생 A(4)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에 따르면 A양은 이날 오전 9시40분쯤 다른 원생 8명과 12인승 통학 차량을 타고 어린이집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A양은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운전기사 B(62)씨와 아이들을 인솔한 보육교사 C(24)씨는 내리기 전 차 안에 아이가 남아있는지 살피지 않았다. 이날 동두천시의 낮 최고기온은 32.2도였다. 아이는 찜통같은 차 안에 7시간 넘게 방치돼 죽어갔지만 아무도 몰랐다.

이번 사건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다. 복지부가 배포한 ‘어린이통학버스 운전자 및 동승보호자 표준매뉴얼’은 운전자와 동승한 보호자가 각각 차량에 남아있는 아동이 없는지 차량 맨 뒷좌석까지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운전기사 B씨와 인솔 교사 C씨는 둘 다 이러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B씨는 경찰에서 “인솔 교사가 알아서 챙길거라 생각했다”고 진술했고, C씨는 “차 안에서 7세 아이 둘이 소란을 피웠고 이를 제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또 어린이집은 매일 아침 통학차량 이용 아이들의 도착 여부를 확인하고, 오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부모에게 전화로 확인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규정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A양의 담임교사는 아이들이 등원한지 7시간이 지난 오후 4시쯤 A양 어머니에게 “아이가 등원하지 않았는데 무슨일이 있느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어린이집에 갔는데 무슨 말이냐”는 어머니의 말에 아이를 찾다가 차 안에서 숨져 있는 A양을 발견했다.

같은 사건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2016년 7월 광주의 한 유치원 통학버스에 갇힌 4살 아이가 폭염 속에 8시간 넘게 방치돼 의식불명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이는 2년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엔 과천의 한 어린이집 차량 안에 2시간 30분동안 갇혔있던 5살 아이가 행인의 신고로 발견되기도 했다.

현장에서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안전정책본부장은 “도로교통법 53조는 어린이 통학버스에는 동승자 탑승을 의무화하고, 하차 시에는 차에 남은 어린이가 없는지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반했을 때 받는 처벌은 20만원 이하의 과태료 뿐”이라며 “아이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마나한 처벌을 하니 경각심을 주기 어렵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사고를 저지른 어린이집에도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 과천 어린이집 사건의 경우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어린이집은 아무런 행정처분을 받지 않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동두천 어린이집의 경우도 당장 운영 정지나 폐쇄 조치 등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동두천 사건을 계기로 아이들에게 차에 갇히면 경적을 울려 알리도록 교육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너무 어리거나 잠에 빠진 경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박중완 서울대병원 소아응급의학과 교수는 “체온보다 높은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체온을 조절하는 시상하부가 망가지고, 뇌를 비롯한 장기가 망가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훨씬 취약해 짧은 시간안에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있다”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아이가 잠든 상태에서 차에 갇힌다면 깨지 못한 채 뇌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막는게 급선무다.

전문가들은 어린이가 통학차량에 갇히는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한다고 조언한다. 이윤호 안실련 본부장은 “운전자가 맨 뒷자리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야 시동이 꺼지도록 하는 ‘슬리핑 차일드 체크(잠든 아이 확인) 시스템’과 차량 시트에 센서를 설치해 아이들이 모두 내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면 아이들이 방치돼 일어나는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진주시의 보인원 어린이집은 안실련 지원으로 지난해부터 이러한 안전 장치가 설치된 차량을 운행하고 있다. 이 곳의 정동균(50) 원장은 “운전자와 교사가 잘 확인하고, 센서로 한번 더 확인한다. 장애아 전담 어린이집이라 예전엔 안전사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정욱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운전자와 동승자, 어린이집 원장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동작 감지 센서 등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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