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고통’ 지적에 … 김상조, 예정 없던 대기업 갑질 조사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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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편의점·외식업종 등을 운영하는 대기업의 ‘갑질’을 겨냥해 칼을 빼들었다. 올 하반기에 200개 가맹본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다. 조사권은 공정위가 가지고 있는 주요 무기다. 공정위가 ‘경제검찰’로 불리며 기업에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이유다.

[최저임금 후폭풍] 공정위 간담회 #김 “점주 최저임금 부담 덜게 할 것” #편의점 등 200개 가맹본부 조사키로 #전문가 “최저임금과 갑질 별개인데 #빌미 삼아 가맹본부 옥죄기 의심”

칼을 뽑은 목적에 대해 김 위원장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가맹점주의 부담 완화”를 꼽았다. 하지만 갑질 근절을 위한 조사권 발동과 최저임금 부담 완화 사이에서 특별한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있다.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으로 입은 소상공인의 피해를 애꿎은 대기업에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가맹점주의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초 이날 간담회의 목적은 17일 시행되는 개정 하도급법의 주요 내용 및 취지 설명이었다. 그런데 지난 14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전년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됐다. 편의점 업주 등 소상공인들은 과도한 인상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최저임금 부담 완화 방안이 이날 공정위가 배포한 간담회 자료에 긴급하게 포함됐다. 소상공인과 같은 ‘을(乙)’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취임 일성을 한 김 위원장이 긴급하게 움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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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인정했다. 그는 “최저임금 상승은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소득 주도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면서도 “노동자를 고용해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했다. 김 위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고민과 보완책이 부족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공정위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늘어나는 가맹점주의 부담을 덜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최저임금 상승 부담 완화 방안

공정위의 최저임금 상승 부담 완화 방안

가맹점주 부담 완화를 위한 공정위 대책의 타깃은 주로 가맹본부를 향하고 있다. 가맹점주의 부담을 늘리는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면 결과적으로 가맹점주가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공정위는 외식점·편의점 분야의 200개 대형 가맹본부 및 이들과 거래하는 1만2000개의 가맹점을 대상으로 서면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가맹사업의 통일성 유지와 무관한 품목의 구입 강제 ▶광고·판촉 비용 전가 ▶예상 매출액 정보 과장 제공과 같은 법 위반 행위를 살핀다는 방침이다. 이미 6개 가맹본부에 대해선 불법 행위를 포착해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공정위는 또 가맹본부가 가맹점의 영업지역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점주 단체 신고제도 도입한다. 신고된 점주 단체가 가맹금 등 거래조건에 대해 가맹본부에 협의를 요청하면 가맹본부는 일정 기한 이내에 반드시 협의에 응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이런 대책이 최저임금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김 위원장이 최저임금의 부작용을 인정한 건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하지만 소상공인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받는 부담과 ‘갑질’로 인해 받는 부담은 별개인데 두 사안을 한데 엮었다”며 “공정위가 최저임금을 빌미로 가맹본부 옥죄기를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가맹본부에 대해 휘두르는 칼날이 결국 가맹점주에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맹본부가 휘청이면 결국 타격은 가맹점주가 받는다”며 “정부는 가맹본부와 가맹점주의 편을 가르지 말고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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