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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계문화유산에 소화전도 없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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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장대는 평일 2만 명, 주말에는 5만 명이 찾는 인기 유적이다. 그런데도 소화전 하나 설치되지 않았고, 야간 순찰마저 전무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문화재 관리 당국이나 소방 당국은 도대체 무얼 했는가. 바로 며칠 전에도 창경궁 문정전에 방화가 있었다. 다행히 초동진화에 성공해 큰 피해는 없었지만 관계 당국은 유사 사건 발생에 철저히 대비했어야 마땅하다.

입만 열면 반만년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임을 내세우는 우리의 문화재 관리수준이 이 정도라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재는 한 번 나면 문화재를 완전 소실시킨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천년고찰 낙산사가 화마에 몽땅 타버린 게 불과 1년 전이다. 또한 근년에만도 경남 함양의 농월정, 정여창 고택, 허삼둘 가옥 등이 방화로 소실됐다.

그런데도 아무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우리는 '문화'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이는 야만에 다름 아니다. 한가하게 광화문 현판이나 바꾸고 국보 1호를 재지정하라고 문화재 당국이 있는 게 아니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보존이나 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사건을 술 취한 방화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화재로 치부한다면 이 같은 일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아울러 최근 잇따르고 있는 '묻지마 방화'에 대한 관련 기관 간 유기적인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서울의 허파인 북한산과 남산에서 최근 발생한 화재는 모두 방화로 추정된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면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방화는 모방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야간순찰 강화 등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묻지마 방화'의 교훈은 대구 지하철 참사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