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서울 컬렉션' 2006년 가을·겨울 패션 트렌드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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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우아한 귀족풍이냐, 아방가르드(전위적) 스타일이냐.'

올 가을.겨울 패션 리더 소리를 듣고 싶다면 콧대를 높이 세우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거나 조금은 어둡고 우울해 보이는 이미지를 강조해야 할 것 같다. 지난달 20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대치동 학여울 무역 전시장에서 열린 국내 최대 패션 축제인 '2006/2007 가을.겨울 서울 컬렉션'에 참가한 63명의 디자이너들 중 상당수가 유행 키워드로 제시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어울릴 듯 서로 충돌하는 패션의 기준이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진 서울 컬렉션에서 만나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 화려한 러플(주름)의 향연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대영 제국의 전성기에 속하던 이 시기의 패션은 화려한 귀족스러움을 자랑했다. 리본을 이용한 과장된 디테일이 대표적. 여기에 긴 목선과 과장된 주름, 가는 허리선과 풍성한 실루엣이 특징이다.

서울 패션 아티스트 협의회(SFAA)의 회장인 박윤수 디자이너가 제시한 스타일은 '에드워디안룩'이다. 정교한 재단의 무릎 길이 코트에 화려한 러플로 장식한 셔츠 등으로 무대를 꾸몄다.'드레스의 여왕'한혜자 디자이너도 허리선이 높은 엠파이어 스타일의 날씬한 드레스를 선보였다. 여기에 금박 장식이 화려한 레이스를 여러겹 겹친 변형으로 누드톤을 강조하는 최근의 드레스 추세를 따랐다. 장광효 디자이너 역시 귀족풍의 디자인에 밀리터리 분위기를 접목해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남성의 이중적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소재는 겨울 옷이니만큼 전반적으로 모직과 가죽이 많이 보이고 컬러는 유행색인 블랙을 비롯해 어두운 회색의 모노톤에 브라운과 포인트 컬러인 레드 등이 주로 사용됐다. 여기에 쉬폰과 레이스를 이용한 다양한 주름으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 고딕(Gothic) 블랙, 눈길을 사로잡다

기성 디자이너들이 귀족풍을 내세웠다면 신진 디자이너들은 아방가르드한 블랙 의상을 위주로 작품을 내놨다. '고스족'으로 대변되는 고딕 문화의 영향을 받은 디자인이다. 3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유럽을 침략했던 고스족의 문화는 기괴한 암흑으로 주로 표현된다. 기성 디자이너들이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함에 눈을 돌렸다면 신진 디자이너들은 어두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문희 디자이너의 의상은 세련된 올 블랙 코디네이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바지와 셔츠, 조끼에 트렌치 코트와 모자까지 모두 블랙을 매치시켰지만 심심하지 않은 느낌이다. 염미.박소영.김은희의 공동 디자이너 브랜드인 에브노말 역시 비대칭적인 입체 재단을 통해 편안한 실루엣에 세련된 빈티지의 냄새를 풍겼다. 특히 블랙 위주의 컬러에 종종 보이는 니트와 가죽 소재의 포인트 컬러는 어두운 듯 신선한 감각을 자랑했다. 블랙과 화이트를 위주로 자신의 두 번째 무대를 보여준 손성근 디자이너도 특유의 가는 실루엣에 재단선이 드러나 보이는 듯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블랙을 위주로 진행된 디자이너들의 쇼에선 메이크업 역시 대부분 눈을 검게 강조하는 스모키 스타일이 주종을 이뤘다.

귀족풍의 의상이나 아방가르드한 고스족의 의상도 빅토리아 시대 문화를 근간으로 나온 컨셉트다. 동시대의 문화를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것이 특이하다. 그러나 홍은주 디자이너는 '빅토리안 펑크룩'이라는 이름으로 두 가지의 상반된 이미지를 접목시켜 의외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주름 장식 같은 디테일에 아방가르드한 기괴함을 섞어 여성성과 남성성의 새로운 조화를 표현했다.

이번 서울 컬렉션 역시 해외 컬렉션보다 한 템포 늦게 열리는 서울 컬렉션의 구조적인 약점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빅토리아풍의 의상은 해외 유명 컬렉션에선 이미 쉽게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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