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정부 개입 중시했던 경제학계의 거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제도학파 경제학자로 유명한 미국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9일 밤(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州)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7세.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그는 토론토대 졸업 후 미국으로 이주해 1933년 캘리포니아 주립대(버클리)에서 석사, 34년에 농업경제학 박사를 딴 뒤 하버드대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2m의 훤칠한 키에 멋을 잘 부려 '신사 경제학자'라는 말도 들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농업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사회과학은 유용성이라는 잣대로 검증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경제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겠다고 뉴딜 정책을 펴는 루스벨트 행정부에 참여했다.

오랜 기간 민주당 정권의 경제 자문역으로 활동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는 인도 주재 대사를 지냈다. '불확실성의 시대' '풍요로운 사회' '대공황' 같은 명저를 쓰면서 독자를 잘 배려하는, 글 잘 쓰는 경제학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49년 하버드대 교수로 돌아왔지만 당시 주류 경제학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경제학 이론의 대부분은 단순히 '전통적 지혜(conventional wisdom)'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그의 의존(依存)효과 이론이 대표적이다. 수요는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에 좌우된다는 고전학파 경제학의 가르침과 달리, 갤브레이스는 수요가 소비자의 자주적 욕망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생산자의 광고.선전 등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고객의 수요와 취향에 맞춰 생산을 하는 게 아니라 광고를 통해 소비자의 욕망을 창출하고 수요를 주무른다는 이야기다. 갤브레이스는 시장경제 기능을 믿기보다 계획경제와 정부통제를 믿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진보적 케인지안(영국 경제학자 케인스의 추종자)이었다.

"시장경제가 중요하다는 건 안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인간 욕망의 법칙에 따른 사회균형모델이다. 때문에 이런 자유시장에선 교육, 쓰레기 처리, 환경보전, 환자.신체장애자.노인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하지만 요즘 시장은 '대기업은 경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소기업과 벤처기업은 거대 기업의 위협에 시달릴 것'이라는 그의 주장과 딱 들어맞지는 않다. GM 등 미 자동차 빅3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일본 메이커들에 뒤처졌다. 반면 80, 90년대의 미국 경제 회생은 상당 부분 중소기업들이 주도했다. 거대 기업 IBM의 단순 하청업체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을 말년의 갤브레이스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유족으로 아내 캐서린 애트워터와 아들 셋이 있다.

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