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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6남매 하버드·예일대에 보낸 전혜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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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섯 남매를 모두 예일대.하버드대 등 명문대에 보낸 어머니다. 네 아들 중 두 명은 미국에서 고위 공직에 올랐다. 그 어머니가 자식 교육의 경험을 정리한 책이 발간 사흘 만에 3쇄를 찍었다. 애들 교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한국 엄마들이 앞다퉈 책을 샀을 것이다. 그런데 '영재교육법'이나 '내 아이 미국 명문대 보내는 비결'쯤을 기대한 엄마들은 다소 당혹스럽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이 어머니가 책 첫머리부터 "내가 자식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명문대를 나왔거나 고위직에 오르는 세속적 성공을 거둬서가 아니라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컸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내 아이뿐 아니라 남의 아이도 잘 키워야 내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어머니의 이름은 전혜성(77). 클린턴 미국 대통령 시절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내고 현재 예일대 로스쿨 학장으로 재직 중인 고홍주(52.해럴드 고)씨의 어머니로 잘 알려져 있다. 저서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 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그를 지난달 28일 만났다. 자그마한 체구와 조용조용한 목소리는 여느 할머니의 인상이었다. 그러나 일단 말문을 열자 당당하고 강인한 한국의 어머니를 느낄 수 있었다.

-자녀들이 모두 사회적 성공을 거둔 비결이 궁금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항상 남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돼라'고 일렀습니다. 부모한테 섬김을 받는 아이, 자신을 섬기는 아이, 그래서 남을 섬길 줄 아는 아이가 진정한 리더로 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아이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심으로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혼자 공부하지 말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같이 해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남편은 집이 비좁은데도 아이들 친구용 책상까지 들여놔 책상이 18개나 될 정도였어요."

-그렇게 가르치다 보니 저절로 잘 되더라는 말씀이신가요.

"남들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려면 일단 어느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목적의식을 세워 줬더니 엄마가 악쓰지 않아도 아이들이 이를 악물고 공부하더군요. 대신 두 가지 원칙을 세웠지요. '아침 식사는 꼭 한 밥상에서 한다, 저녁에는 다 같이 모여 공부하고 토론한다'였지요. '공부해라' 대신 '공부하자'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 한국의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의 사교육 스케줄을 치밀하게 관리하는 이른바 '매니저형 엄마'가 유능한 엄마의 전형처럼 여겨집니다.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유학 보내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도 많고요.

"한국 엄마들은 우리 아이가 경쟁 대열에서 낙오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심이 심하지요. 그러다 보니 교육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게 됩니다. '기러기 아빠'를 보면 저렇게 아빠가 아이와 떨어지면서까지 가르쳐야 하는 게 무엇인가 싶어요. 아이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부모 자신의 만족 아닐까요. 그런 이들에게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어요. 교육의 목적은 자립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어렸을 때 신문 배달을 해 용돈을 벌었습니다. 셋째 아들 홍주가 예일대 로스쿨 학장이 됐을 때 지역신문(뉴 헤이븐 레지스터) 헤드라인이 '우리 신문을 배달하던 소년이 예일대 학장이 됐다'였어요."

-스스로도 육 남매를 키우면서 박사 학위를 두 개나 받으셨는데요.

"쉽지는 않았지요. 저희 남편이 타지 생활을 오래 하니 외로우니까 자식 욕심이 많았어요. 전화번호부 한 페이지를 고씨 집안 자식들로 채우겠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깐요. 오죽하면 막내를 낳고는 제가 '더 이상 낳게 하면 이혼할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놨겠습니까(웃음). 애를 업고 서서 타자를 칠 때도 있었어요. 애들이 잠들면 그때부터가 제 공부 시간이었지요. 고학생 부부니 보모 쓸 여유도 없었어요."

-형제들이 워낙 뛰어나니 그중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도 있지 않았을까요.

"막내 정주가 고등학교(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연설을 했는데 제목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어요. '아, 얘가 내색은 안 했어도 형과 누나들이 워낙 뛰어나니 스트레스가 심했구나' 실감했지요. 학교에서는 '고씨 왕가(Koh Dynasty)의 막내가 왔다'고 하면서 잘하면 당연히 여기고, 못하면 비교했으니 왜 안 그랬겠어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뛰어난 게 아니에요. 다들 무지무지한 노력파, 워커홀릭(일 중독)이에요. 특히 홍주는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치열하게 노력하지요. 지금도 오전 4, 5시에 e-메일을 보내면 즉시 답장이 오곤 합니다."

-고홍주씨 얘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홍주는 배려심이 참 깊어요. 인권담당 차관보 시절 전 세계 43개국 이상을 돌았는데 그때마다 숄.앞치마.머그잔 등 사소한 것이지만 꼭 선물을 사왔어요. 국무부를 떠날 적에는 직원 70여 명에게 일일이 손으로 편지를 썼어요. 예일대 로스쿨 학장이 되고 나서는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한 백인 여성이 '30여 년간 예일대에서 일했지만 학장한테 초대받은 건 처음'이라고 감동하더래요."

-자녀들에게 한국에 대한 의식은 어떻게 심어 주셨나요.

"아이들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부모가 저렇게 자랑스러워하니 대단한 나라인가 보다'라며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하더라고요. 이름을 표기할 적에도 '해럴드 홍주 고' '하워드 경주 고' 이런 식으로 미들 네임(middle name.가운데 이름)을 꼭 쓰게 했고요."

-책에 소개된 '오센틱 리더십(authen

tic leadership)'이란 무엇인가요.

"'오센틱 리더십'이란 우리말로 하면 '진정한' 또는 '유니크한(독특한)' 리더십이지요. <표 참조>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을 섬기고 남을 섬기고 세상에 봉사하는 리더십입니다. 또 그런 리더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고요."

-일주일 뒤면 어버이날인데 어버이날에 얽힌 특별한 기억이 있으신가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어요. 제가 자고 있는데 침대에서 아침을 먹으라고 상을 차려 왔어요. 엄마가 한번도 앉아서 밥을 먹는 걸 못 봐서 어버이날이라도 좀 호강하라고 그랬대요. 어린것들이 어찌 저런 마음을 먹었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지요."

글=기선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 '고 패밀리'는

2대 걸쳐 미국 박사학위 11개 따

'고씨 가족(Koh Family)'의 가장 고 고광림 박사는 생전 "개인이나 국가나 위대한 성취는 한 세대에 이뤄지기 어렵다. 몇 세대, 수십 대를 두고 공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도 출신인 고 박사는 경성제국대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서 영어와 법률사상사를 강의했고 1949년 미국에 건너가 럿거스대 등 3개 대학에서 정치학.법학 등으로 박사학위를 3개나 받은 수재였다. 그는 자녀들에게 유색인종이라 하더라도 실력만 있으면 차별의 벽을 넘을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하며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 공들인 결과물이 오늘의 6남매다. 고씨 가족이 받은 박사 학위는 모두 11개에 달한다. 장녀 경신씨는 하버드대를 나와 MIT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중앙대 화학과 교수로 일한다. 예일대 의대를 나온 장남 경주씨는 매사추세츠주 보건후생부 장관을 지냈고 하버드대 공공보건대학원 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하버드대를 나온 차남 동주씨는 하버드대와 MIT에서 의학과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로스쿨 박사 출신의 3남 홍주(해럴드 고)씨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 법대 석좌교수가 됐다. 차녀 경은씨는 하버드 법대를 나와 컬럼비아 법대 부교수를 거쳐 예일대 법대 석좌교수로 일한다. 예일대에서 남매가 석좌교수가 된 것은 사상 최초였다. 하버드대 사회학과를 나온 막내 정주씨는 전공을 미술로 바꿔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기선민 기자

*** 전혜성씨는

1929년 서울 출생. 경기여고를 나와 이화여대 영문과 2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가 디킨슨대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장면 정부에서 초대 주미특명전권공사와 유엔 대표를 지낸 고 고광림 박사와 고학생 시절 만나 결혼한 뒤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립 민족학박물관과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객원 교수를 지내며 한국학과 한국 문화 알리기에 주력했고, 예일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부장 등을 역임했다. 52년 남편과 공동 설립한 한국연구소를 계승한 동암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서 현재까지 한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차세대 지도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고 전항섭 유한양행 사장이 아버지다. 저서로는 96년 낸 '엘리트보다는 사람이 되어라'가 있다. 2004년 한인이민100주년준비위원회의 '지난 100년간 미국에 가장 공헌한 한인 100인'에 남편, 장남 경주씨, 3남 홍주씨와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