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독주시대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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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둘러 소집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회가 30일 비공개로 개막된 지 불과 4시간만에 「고르바초프」시대가 막을 연이래 가장 과감하고 대규모의 인사개혁을 단행하고 막을 내렸다.
이번 회의결과는「고르바초프」서기장의 개혁노선을 반대하는 보수세력의 퇴진과 개혁주도세력의 본격적인 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고르바초프」의 입장은 더욱 강화되고 지도부 내부의 긴장·갈등 관계가 상당히 해소된 것이다.
사실 이 같은 변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돼온 것이다. 지난 6월말에 열린 소련 공산당대회는 당 기구의 개편과 축소, 그리고 행정부에 대한 당의 간섭을 줄이는 등 내용을 의결하고 이를 위해 10월말에 최고회의를 소집해 헌법개정을 거쳐 오는3월까지 인민대표회의를 구성, 대통령과 같은 국가원수(최고회의 의장)를 선출하는 등의 정치일정을 세웠다.
따라서 이번의 갑작스런 당 중앙위 총회 소집은 기왕에 세워놓은 정치일정을 크게 단축한 것이다.
이처럼 정치일정을 앞당긴 이유는 최근「고르바초프」서기장의 동정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지난8월부터 9월초까지 약5주 동안 크림반도 얄타에서 하기휴양을 보냈다.
「고르바초프」가 여름휴가를 보내는 동안 반「고르바초프」세력의 기수이자 소련 권부의 제2인자인「예고르·리가초프」는 그의 개혁·개방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고르바초프」로 하여금 어떤「비상조치」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한 것은 지난달 그가 여름휴가를 마친 뒤 시베리아를 방문하면서라고 할 수 있다.
시베리아 현지 주민들은「고르바초프」서기장에게 소위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이 인민의 생활향상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함으로써「고르바초프」자신은 물론 그를 수행했던 정책담당자 등을 당황하게 했다.
「고르바초프」는 당시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가진 연설에서『당은 우수한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있다』고 말하는 한편,『좌와 우 모두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 심각한 위기감을 표명한 바 있다.
이 같은 위기감은 그 후 지난달 23일 소련 주요 언론인 모임에서 가진 연설에서 페레스트로이카를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해 경고하는 한편,『당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당내에 정예분자를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8일「에리히·호네커」동독 공산당 당수의 환영 만찬에서 다시 한번 페레스트로이카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번 인사개편에서 두드러진 것은 당내 제2인자이자 정치국 이론담당위원이던「리가초프」가 신설된 당 중앙위 농업위원장으로 밀려난 것이다.「리가초프」는 정치국 위원에선 살아남았으나 앞으로는 당 기구를 통제할 수 없는 부서를 맡음으로써 사실상 제2인자 자리에서 탈락했다.
그 대신 중앙위 대변인이자 정치국 후보 위원으로서「고르바초프」의 측근인「바딤·메드베데프」가 신임 정치국 정 위원이자 이론담당 서기로 급속히 부상했다.
이번에 정치국원에서 퇴임한 소련연방최고회의 의장「안드레이·그로미코」, 정치국원「미하일·솔로멘체프」, 후보위원「블라디미르·돌기흐」와「표트르·데미체프」등은 보수성향이 강하고 경제관계업무를 담당했던 인물들로 이들의 퇴임은「브레즈네프」시대의 사실상 종막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로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가「고르바초프」서기장의 개혁노선을 강력 지지하는 인물들이다.
「체브리코프」를 서기국원을 겸임토록 한 것, 그리고「블라소프」내상을 정치국원 후보로 승격시킨 것이 주목된다. 이들이 중용된 것은 최근 비 러시아 계 주민들의 민족주의적 자치확대요구 등으로 소란스런 민족문제에 대해「책임·규율·질서」를 새로 내세우고 있는 「고르바초프」가 이를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그동안 사회주의국가관계담당 서기국원이었던「메드베데프」가 새로 정치국원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막강한 이데올로기담당을 맡은 것,「고르바초프」의 측근「야코블레프」가 정치국원 겸 서기국원으로 외교담당을 맡은 것도 주목된다.
이번 조치는「고르바초프」서기장이「브레즈네프」시대의 잔존세력을 일소하고 자신의 개혁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출발이라 할 수 있다.「슐츠」미 국무장관이 그를 두고 표현했듯이「강하고 단단한 인물」인「고르바초프」의 개혁시대가 강한 추진력을 갖게된 것으로 보인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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