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트랙에 〃블랙파워〃회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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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6일 벌어진 남자 8백m결승은 아프리카가 자랑하는 중장거리의 황제 모로코의「사이드·아우이타」를 비롯,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브라질의「호아킴·크루스」, 87세계선수권 2·3위인 영국의「피터·엘리엇」과 브라질의「조지·루이즈·바보사」등 세계정상급 선수들이 대거출전, 슈퍼스타들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관심을 모았었다.
그러나 단 한번의 국제대회 입상경력도 없는 케냐의「폴·에랭」은 놀라운 스피드를 과시하며 슈퍼스타들을 모두 따돌리고 우승, 세계육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에랭」이 일으킨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아프리카의 돌풍은 또 다시 메인 스타디움에서 재현됐다.
26일 마지막 경기로 벌어진 남자 1만m 결승에서 모로코의 무명선수「브라힘·보타이브」는 시종 선두를 고수하며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케냐의「킵캔보이·키멜리」
도 동메달을 획득, 아프리카세가 맹위를 떨쳤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올림픽사상 8백m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1만m는 68년 멕시코,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이어 통산 3번째다.
블랙파워의 돌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남은 남자 중장거리와 마라톤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우선 1천5백m의 경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는 모로코의「아우이타」가 패권을 넘보고 있고 지난해 세계선수권 4위의「조제프·체시레」를 필두로 한 케냐선수 3명, 또 87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소말리아의「압디·빌레」를 대신해 참가한 무명의「자마·모하무드· 아덴」등이 출전하고 있어 전력 면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5천m 역시 무패를 자랑하고 있는「아우이타」와 이번 대회 1만m 우승자인 모로코의 「보타이브」및 세계크로스컨트리 대회를 2연패한 케냐의「존·누기」등 전례 없는 최정예 들이 출전하고 있어 이 종목의 우승은 아프리카 몫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이와 함께 서울 올림픽 파이널 이벤트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남자마라톤 또한 블랙파워가 맹위를 떨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나카야마」와「세코」를 내세운 일본세가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하고 있지만 아프리카는 월드컵 마라톤 2연패를 비롯, 파리·시카고 등 주요 국제대회에 15회 출전, 5차례 우승을 차지한 지부티의 검은 별「아메드·살레」가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
「살레」는 특히 금년 4월 로테르담 마라톤대회에서 세계역대 2위 기록인 2시간9분7초의 기록을 보유, 참가선수 중 가강 좋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록이 해를 거듭할수록 향상되고 있어 이번 대회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
또 시카고 마라톤 2회 우승의 세계랭킹 9위「로블레·자마」(지부티)와 87뉴욕·88보스턴
대회 우승자「이브라힘·후세인」(케냐), 87세계선수귄 1위「더글러스·와키후루」(케냐) 등세계 주요 마라톤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검은 철각들이 서울코스에 도전하고 있어 1위부터 3위까지를 모두 아프리카 선수들이 휩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프리카세가 이처럼 중장거리와·마라톤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전인 지난해부터다.
86년까지만 하더라도「아우이타」와「살레」정도가 아프리카 육상을 대변했을 뿐 대부분의 종목에 있어 아프리카 선수가 입상하거나 두각을 드러낸 적은 거의 없었으며 이에 따라 세계 육상계도 아프리카대륙을 그렇게 주시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프리카는 남자 8백m를 필두로 1천5백m·5천m·1만m와 마라톤에 이르기까지 중장거리 5개 종목을 석권, 세계육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역대 올림픽전적으로 보더라도 8백m는 미국 (8회 우승) , 영국 (6회) , 뉴질랜드 (2회)가, 1천5백m는 영국 (5회) ,핀란드·뉴질랜드 (3회) , 5천m는 핀란드 (7회) 와 프랑스가, 그리고 1만m는 핀란드 (7회) 와 소련·체코 (각2회) 가 대부분의 금메달을 획득, 미국과 유럽세가 주도권을 장악해 왔던게 사실이다.
따라서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블랙파워들의 돌풍은 서울 올림픽에서도 또다시 입증, 명실공히 남자 중장거리의 최강 세력으로서 세계육상계의 판도를 바꿔놓았으며 미국·소련·동독의 경계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들 검은 철각들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4백m에서 나이지리아의「이너슨트·에그부니케」가 2위를 차지한데 이어 이번 서울 올림픽에서는 세네갈의 무명선수「엘·하르디아·바」가 4백m 허들에서「에드윈·모지스」를 제치고「안드레·필립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등 단거리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 중장거리에서 불기 시작한 검은 돌풍이 단거리에도 이미 상륙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육상의 세력확대가 해를 거듭할 수록 일로 확장할 것이 틀림없으며 미국·소련·동독의 독점 영역마저 잠식할 것이 멀지 않았다고 예견하고 있다.
이들은 또 아프리카 선수들이 열사와 고지의 악조건에서 단련된 기본적인 체력이 천부적이라고 할만큼 뛰어난데다 최근 들어 미국을 비롯한 프랑스·영국 등 소위 전통적인 육상강국으로부터 기술지도를 받으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다고 풀이하고 있다.
실례로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인「후세인」은 미국의 뉴멕시코 대학에서, 87세계선수권 8백m 우승자인「빌리·콘첼라」도 미국의 마쓰다 육상클럽에서 각각지도를 받았으며 87세계선수권 마라톤 우승자인「와키후루」는 일본의 SB식품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쌓았고「아우이타」는 이탈리아에서 특별지도를 받는 등 대부분 유명선수들이 외국에서 훈련을 받고 나서 국제대회에 입상했다.
또 한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대부분 아프리카국가의 경우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한 경제사정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다른 스포츠를 즐길 수가 없으며 특별한 용기구나 훈련장소가 필요 없는 육상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몰린다는 점이다.
아뭏든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아프리카 육상은 미국·소련·동독 등 스포츠 3강과 어깨를 겨루게 됐으며 그들이 몰고 온 검은 돌풍은 갈수록 그 위세를 더할 것이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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