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의 대미 감정 "살얼음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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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올림픽을 통해 한미간에 미묘한 감정적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이같은 갈등은 언론을 통한 간접적 방법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올림픽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과 연간, 하나씩 쌓이고 있다.
특히 지난 22일 복싱경기장 소동에 대한 미NBC- TV의 신랄한 보도와 미 수영 2관왕「델비」선수의 절도사건과 관련한 한국언론의 보도는 이같은 갈등을 단적으로 나타내고있다.
양국간의 이번 갈등은 단순히 이 두가지 사건에서만 촉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번 올림픽을 지켜보는 내외신 기자들의 견해다.
미국의 대한 무역문호 개방압력이 미국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오랜 불만과 이번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언론은 물론 한국사회전체가 미국의 적대국인 소련을 비롯, 동구권에 대한 대대적 관심, 즉「지나친 대접」을 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이 두번째 불만은 금메달에서도 미국을 압도할 소련·동독을 한국국민이 미국을 도외시하고 너무「환대」한다는 우방으로서의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림픽문제를 두고 한국인의 눈에 비친 미국은 그동안 ▲서울올림픽개최지 변경제의 ▲지난 l5일 미선수단의 올림픽개회식 보이콧 움직임 ▲미선수단의 개회식장 무질서행위 ▲「칼·루이스」선수의 김포공항에서의 무례한 행동 ▲「헬믹」미 올림픽위원회위원장의「루이스」선수 및 개회식 무질서에 대한 사과거부 ▲복싱경기장 소동에 대한 NBC-TV의 일방적 비판보도 등 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로 얼룩지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올림픽조직위(SLOOC)가 IOC를 통해 미국선수단의 개회식 참가선수 숫자제한을 요청했으나 미국선수단은 입장식 보이콧으로 위협하며 이를 거부했다. 미선수단은 정작 개회식장에서 무질서한 행동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개회식장의 한 외국기자는 미국선수단을 뒤따르던 바누아투 선수단이 행진에 방해를 받자『미 제국주의가 다시 약소국을 침범했다』고 빈정거렸다.
84 LA대회를 취재한 다른 외국기자는 미선수단이 LA대회에서는 저렇게 무질서하고 안하무인이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미국선수단에 대한 불만이 NBC-TV의 복싱경기장 사건보도에서 급격히 고조되는 가운데「델비」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언론은 물실호기로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각 경기장에 나가있는 젊은 자원봉사자들이『미국선수들은 한국자원봉사자에게 무례하다』는 내용을 SLOOC 관계자에게 계속 보고해옴으로써 SLOOC측은 내심 걱정에 싸여있다.
심지어「델비」사건을 보도한 한국신문기사를 복사한 스크랩이 MPC내 외국기자용 게시판에 부착되기도 했다.
한미간 감정이 묘하게 발전하게 된 것은 이미 올림픽 개회식 전부터 관계자들을 긴장케 했던 요인이었다.
SLOOC는 IOC고위층으로부터 한국이 소련 등 일부국가에 편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를 전해듣고 있었다.
이같은 우려는 SLOOC국장급 등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다.
한 국제담당 간부는『미국 입장을 적극 동조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이 올림픽 후 미국과 관계를 단절할 것도 아니고 미국도 어쨌거나 우리의 오랜 우방인데 너무 작은 일에 감정을 앞세우는 것도 시야가 좁은 일』이라고 걱정했다.
다른 외교관 출신 간부는『미국은 다양한 사회이고 다양한 의견과 행동이 나올 수 있는 국가』라고 전제하고『획일적이고 흑백논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의의식구조도 이같은 단편적인 사건을 확대 해석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갈등을 의식해선지 두 선수도 사과성명에서 자기네 행동이『양국간의 관계를 해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도 매우 외교적인 말을 하고있다.
평화의 올림픽에서 우방국간의 감정대립이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순탄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서울올림픽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이기도하다. <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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