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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은퇴 준비, '죽음에 대한 계획' 서두르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1)

한 친구가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심정지로 사망했다. 하루 사이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이다. [사진 중앙포토, Freepik]

한 친구가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심정지로 사망했다. 하루 사이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이다. [사진 중앙포토, Freepik]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을 한잔 나누다가 헤어졌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튿날 비보가 들렸다. 한 친구가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심정지로 죽었다는 것이다. 사연인즉 운전기사가 종점에 도착해서도 좌석에 사람이 있어 가보았더니 이미 숨져 있었다고 한다. 어제까지 유쾌하게 얘기를 나누던 친구가 하루 사이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이다.

오래전에 세상을 뜬 친구도 있다. 직장 생활이 한창인 40대에 간암 판정을 받고 치료와 재발하기를 거듭하다가 숨졌다. 몇 번의 수술을 거쳐 5년이 지난 후 이제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기뻐했는데 몇 년 후 다시 다른 장기에 전이되어 운명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친구 하나가 동창회 명단을 살펴보더니 480명이 졸업했는데 이미 75명이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한국 사람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는데 60대에 15%가 넘는 사람이 숨진 것이다. 어느 친구는 "평균수명이 늘어나 우리 세대는 90세까지 살 거야" 하며 장담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죽어가거나 투병생활을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지만 확실한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심정지로 갑자기 죽는 것을 선호할까, 아니면 고통을 느끼더라도 암으로 천천히 죽는 것을 선호할까?

삶의 마지막에서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

어느 기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고통을 받더라도 천천히 죽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 이유는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의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기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고통을 받더라도 천천히 죽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 이유는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의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기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적이 있다. 여러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것을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고통을 받더라도 천천히 죽는 것을 선호하는 답이 많았다. 왜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했을까.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것일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나 후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그것보다 삶을 살며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의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 사례가 있다. 유진 오켈리는 뉴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1972년 세계적인 회계법인 KPMG에 입사했고 2002년부터 3년간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이전까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으며 가족,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선고가 내려졌다. 그의 나이 53세였다.

그는 병원 치료를 받으며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하고 생명의 연장이나 삶에 대한 집착보다 아내와 자식, 친구들과 동행으로 남는 시간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몇 주간을 인생이 그에게 준 선물로 생각했다. 그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집중했다.

먼저 그는 가족을 중심 원에 넣고 바깥쪽으로 원을 그려가며 그곳에 오랜 친구들, 사업상의 절친한 동료, 공통의 경험으로 인해 삶을 서로 고양해준 사람의 명단을 적었다. 그리고 후자부터 작별인사를 나누는 의식을 시작한다.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장소는 그때그때 달랐다.

예를 들면 공통의 경험을 가진 지인들과는 그곳을 찾아 옛 추억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서로가 얼마나 중요한 관계인가를 재인식한다. 오켈리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들 또한 그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전했다.

오켈리의 깔끔하고 의미있는 마무리

인생이 내게 준 선물, 유진 오켈리 지음. 이 책은 뇌종양 진단을 받은 지 세 달 만에 사망한 저자의 마지막 90일 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인생이 내게 준 선물, 유진 오켈리 지음. 이 책은 뇌종양 진단을 받은 지 세 달 만에 사망한 저자의 마지막 90일 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을 운이 좋다고 표현했다. 오켈리는 투병생활을 하며 자신보다 불행한 암 환자를 많이 만났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환자,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는 환자, 뒤에 남겨질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괴로워하는 환자. 그는 그들을 위해 암 환자 기금을 마련한다.

그는 마지막 몇 주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생의 마지막 시기가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가 책을 쓴 이유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대개 생의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그리고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죽음을 통고받으면 마지막까지 연명 치료에 매달리다가 허무하게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켈리는 회계사답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건설적인 경험으로 끌어올렸다.

만약 당신이 60세인데 70세쯤에나 죽음에 대한 계획을 세우려 한다면 더 일찍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지금 40세인데 20년 후에나 그 계획을 세울 생각이라면 더 일찍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자신의 죽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은퇴 준비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 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서도 그리 허둥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주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도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남길 수 있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manjo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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