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함초롬 삼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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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뿌리 내린 제비꽃이 기어이 보랏빛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땅바닥 살필 일 없는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면서도 어찌 그리 소담한 꽃을 피웠을까. 시골길 담벼락에 기대어 복주머니를 주렁주렁 단 금낭화는 아침이슬에 함초롬히 젖었다. 금이야 옥이야 보살펴 주는 이 없건만 어찌 그리 청초할까. 산기슭 켜켜이 쌓인 낙엽을 헤집고 분홍빛 꽃을 틔운 얼레지는 한줌 햇살에도 속살을 훤히 드러낸다. 가녀린 줄기로 제 몸 하나 못 가누며 무에 그리 탐스러운 꽃을 열어 젖혔을까.

산과 들이며 도심이든 어디든 터 잡고 뿌리내릴 흙만 있다면 모질게도 뿌리 박아 꽃을 피우는 게 들꽃이다. 생김도 빛깔도 이름도 제각각이지만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손톱보다 작은 봄까치꽃의 하늘빛은 눈 시리고, 봄볕에 조는 듯 고개 숙인 할미꽃의 솜털은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하다. 그저 스스로 피는 꽃이라 귀한 대접을 못 받는 들꽃이지만 그 꽃잎마다 넉넉한 봄을 한 아름 품었다.

꽃을 접사할 땐 다양한 각도로 세심하게 살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특징을 찾아야 한다. 위에서 내려보는 것 뿐아니라 바닥에 엎드려 위를 보는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렌즈를 통해 보는 꽃은 미세한 바람에도 춤추듯 움직임이 심하니 참고 기다려 정지된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모진 풍파 겪으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들꽃의 인고에 비하면 엎드려 기다리는 노력은 견줄 바가 못 된다. 아침이슬 영롱하게 맺히거나 보슬비에 촉촉이 젖을 때를 노리면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방울과 생동감이 넘치는 꽃을 어울러 담을 수 있다.

Canon EOS-1Ds MarkII 100mm f8 1/60초 Iso10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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