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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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여론이라는 것은 그 조사가 실시된 시점에서 집약되는 쟁점들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그와 같은 여론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가변성을 갖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특히 조사에서 묻는 문항들이 시사적인 것일수록 그에 대한 여론은 상항이 변함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조사결과를 음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에서 뚜렷이 부각되는 여론의 일반적 경향은 국민들이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와 통일에 대해 매우 확고한 열망과 기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화와 통일의 과제에 관한 한 국민들은 비록 점진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진전」 이 이루어지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점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통일에 관련하여 국민의 절반정도가 앞으로 10년 뒤쯤까지는 남북통일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히 주목을 끈다. 그 동안에는 통일의 과제가 주로 부위성의 수준에서 인식되어 왔던데 비해 이제는 통일이 가능성의 수준에서도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큰 진전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변화는 정부의 통일 정책이 적극성과 개방성을 띠어 나가게된 점, 통일의 과제와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관에 의한 독점으로부터 벗어난 점, 중공· 소련· 동구권 등 공산권국가들과의 교류가 증가한 점등과 같은 상황의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북대화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으로 국내의 정치적 안정과 정치적 민주화 등을 꼽고 있는 것과 관련시켜 볼 때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도 통일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증가시킨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대부분 체제로서의 북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동족으로서의 북한사람들에 대해서는 민족적 동일성의 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 (37%) 들이 『지금 북한사람을 만난다면 남한사람을 만났을 때와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고 응답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한 학생들의 회담방식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대부분 (79%) 이 정부를 통하는 방식을 지지하고 있고 『정부를 통할 필요가 없다』 는 응답자는 10%를 넘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정부가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통일정책을 수행해 나가기를 원하는 국민들의 요망으로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현안들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는 현안의 회피나 호도와 같은 소극적 해결방식을 명백히 거부하고 정정당당한 해결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 점에서는 확고하지만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올지도 모를 극단적인 처리방식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가령 대부분의 국민들은 광주사태의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3분의1 정도의 응답자가 지지하고 있다.
또한 과반수의 국민들이 전 대통령의 국회에서의 「직접증언」 에 찬성하고 있으나 위법사실이 있을 때 부정한 재산을 환수하는 조건으로 형사처벌의 면제를 지지하는 응답자도 역시 과반수에 달하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의 중간평가도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대부분이지만 평가의 결과 지지도가 낮을 경우에도 물러나기보다 『평가의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면 된다』 는 응답자가 반을 넘고 있다.
이와 같은 반응은 과감한 민주적 개혁을 원하면서도 극단적인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바라지 않는 국민의식의 복합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 정부에 대한 평가와 세 김씨의 차기 대통령 출마에 대한 의견에 있어서도 국민들의 여론은 복합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들은 노 대통령 정부가 수행한 지난 6개월 동안의 정책에 대한 평가에 있어 경제 및 사회정책 부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은 반면 정치적인 부문 (민주화· 언론자유보장· 자율화· 남북관계개선) 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세 김씨의 차기 대통령 출마에 대해서는 세 사람이 모두 출마 지지율과 출마 반대율이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점도 국민의 정치 지도자 및 정당에 대한 평가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임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점이다.
현재의 정치 지도자나 정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국민 개개인의 수준에서도 단순한 것 같지 않으며 성· 연령· 지역· 계층 등과 같은 사회적 범주별로 보더라도 과거에 비해 다원적인 특성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견해를 보면 신문이 방송보다 공정성에 있어서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나 아직도 「더 공정해졌다」는 견해와, 「별 차이가 없다」 는 견해가 비슷하게 양분되어 있어 국민들은 언론의 공정보도에 대해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국민들은 대부분 서울 올림픽에 대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나 경제적 효과 (수출증대, 관광수입증대 등) 보다 국제적 지위향상이나 한국문화 소개 등과 같은 비경제적 측면에서의 긍정적 효과에 훨씬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점도주목을 끄는 대목이다.
끝으로 국민들은 물가불안· 노사분규· 부동산 투기 등을 시급히 해결해야할 경제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농축산물· 양담배 수입 등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해 둔다.
이상과 같은 국민 의식조사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국민들은 「안정 속의 개혁」 보다 「개혁을 통한 안정」 을 희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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