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서 만난 두 '야구 덕장' 한때 한솥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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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진 제40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일간스포츠.대한야구협회 공동주최.KT후원) 결승전에서 만난 장충고 유영준(44) 감독과 광주 동성고 윤여국(46) 감독은 1980년대 중반 실업 야구 한국화장품에서 1년 남짓 한솥밥을 먹었다. 유 감독은 포수였고, 윤 감독은 투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을 '한국화장품 배터리'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한국화장품을 두 사람의 '공통 분모'라고 내세우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을 같이 묶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덕장(德將)'이다. 오랫동안 두 감독을 지켜본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은 "이 바닥(아마추어 야구)에서 덕을 많이 쌓은 감독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 감독은 2002년 10월부터 장충고를 맡았다. 만년 하위팀이었고 지원도 열악했다. 이수중 사령탑으로 한참 명성을 얻고 있던 유 감독이 장충고로 간다고 하자 이수중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감독님과 함께 운동하고 싶다"는 선수가 줄을 이었다. 선수를 키우는 능력뿐 아니라, 선수들을 대하는 그의 인품이 인재들을 끌어 모았다. 그때 그를 따라온 선수들이 꼴찌팀 장충고를 전국대회 우승 후보로 만들었다.

유 감독은 "이수중 때도 그랬지만, 어려운 팀을 맡아 성장시키는 게 나에게는 커다란 도전이고 즐거움"이라며 "다른 학교에서 좋은 조건을 내걸었는데 나만 믿고 따라와 준 애들(현재 3학년)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윤 감독이 동성고(당시 광주상고)에 온 98년, 광주의 패권은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등을 배출한 광주일고가 쥐고 있었다. 동성고는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윤 감독은 모교에서 자신이 느꼈던 승리의 쾌감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79년 화랑대기에서 윤 감독은 대회 모든 경기(6경기)에서 완투승을 올리며 우승기를 거머쥔 경험이 있었다. 윤 감독이 부임한 이듬해인 99년부터 동성고는 광주일고를 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주의 패권은 동성고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 감독은 부임 이후 전국 대회에서 5차례 정상(준우승 3회)에 올랐다. 한기주(기아) 같은 걸출한 스타도 나왔다. 윤 감독도 광주에서 '인덕 있는 감독, 야구를 배우고 싶은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감독 모두 자율성을 중요시한다. 윤 감독은 "먹고 살려고 야구 하는 시절은 지났다. '왜 야구를 하는가'하는 목표의식을 키워주지 않으면 결국 실패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 감독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 야구로 똘똘 뭉치게 해야한다. 그래야 팀도 선수도 쑥쑥 큰다"고 말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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