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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코끼리 산다""귀신이다"…판사들 때아닌 '코끼리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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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를 어찌하오리까”…판사들 김명수 비판 잇따라

 법관사찰 및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요구하는 자료 제출을 하지 않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법원 내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재판거래 의혹 ‘방 안 코끼리’에 비유 #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 대법원장 겨냥 # “방 관리자의 태평함이 충격적” # “‘코끼리’ 아닌 ‘귀신’일수 있다” 반박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정욱도(42ㆍ사법연수원 31기) 대전법원 홍성지원 부장판사는 2일 법원 내부 전산망에 ‘코끼리를 어찌하오리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정 판사는 재판거래 의혹을 코끼리에 비유했다. 그는 “방 안(법원)에 코끼리가 살고 있는데, 방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코끼리의 존재만큼이나 코끼리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방 관리자의 태평함이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부의 비위 수사를 진행 중인데, 김 대법원장(방 관리자)이 이에 대한 자료 협조에 소극적인 걸 비판한 내용으로 읽힌다.

정 판사는 “문제되는 재판의 담당자 본인이 하는 ‘근거 없다’는 해명도 코끼리를 키우는 악수”라고 지적했다. 또 “논란 끝에 동물을 치우는 인력인 검찰을 방에 들이기로 했다”며 “그들이 직분에 맞는 날카로움과 공정함으로 코끼리를 치워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앞서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인 차성안(41ㆍ35기) 판사는 지난달 2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행정처장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관련 행정처 질의사항’이란 글을 올려 디가우징과 관련한 사항을 김 대법원장이 보고받고 용인했는지 답해달라고 요구했다.(중앙일보 2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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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도 판사의 글에 대한 반박도 제기됐다.
정원(51ㆍ29기)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이번 사태의 일면이 어쩌면 ‘방 안의 코끼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집에 귀신이 산다’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데 행정처의 고민이 있는 것 같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는 “‘고스트버스터’로 나선 사람들이 그렇게 믿음직하지 않다는 점도 고민일 것 같다”며 “그럼에도 귀신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우리 법원은 조만간 ‘곤지암’ 폐가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으로 이번 사태에 임해주기를 기대한다”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번 사태와 관련해 김 대법원장을 판사 중 가장 먼저 비판하고 나섰던 차성안 판사가 또 나섰다.
차 판사는 정원 부장에게 “‘우리 집에 귀신이 산다’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내 주시면 좀 더 생산적인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문제제기하고 해결하는데 나선 사람들, 아마도 판사들을 지칭하시는 듯한데 그 사람들 중 하나로 평가될 만한 저는 스스로를 ‘고스트버스터’로 생각한 적은 없다”며 “제가 쫓고자 하는 것은 실체 없는 귀신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 자체에 대하여 논하지 않고 그것을 문제제기한 사람들이 믿음직한지를 보는 행동은 행정처가 문제제기한 판사들의 뒷조사를 하고, 알게 모르게 압박수단을 써온 방식과 일부 통하는 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문병주ㆍ현일훈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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