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자동판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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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자동판매기’-최승호(1954∼ )

오렌지 쥬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눌렀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는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다닌다

정신 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를 걷으며

자, 차린다, 이제 나는 뜻밖의 커피를 마시며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매춘부라고 불러도 되겠다

황금교회라고 불러도 되겠다

이 자동판매기의 돈을 긁는 포주는 누구일까 만약

그대가 돈의 권능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대는 돈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 매음의 자동판매기가

한 컵의 사카린 같은 쾌락을 주고

십자가를 세운 자동판매기는

신의 오렌지 쥬스를 줄 것인가



나쁜 습관은, 반드시, 저절로 생긴다. 나쁜 습관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들기 때문에,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자각 증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쩝쩝 소리를 내며 밥먹는 사람, 말끝을 흐리는 사람, 일을 벌려놓기만 하는 사람, 남에게 지면 죽는 줄 아는 사람…. 하지만 좋은 습관을 들이는 데는 엄청난 집중과 지속이 필요하다. 자기와의 전쟁이다. 삶에 지는 사람들은 자기의 나쁜 습관에 지는 사람들이다. 습관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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