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 대첩’이라 부를 만하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기적을 이뤄냈다. 지난 27일(현지 시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지난 대회 챔피언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을 2-0으로 꺾었다. 공격수 손흥민(26·토트넘)이 앞에서 찌르고 골키퍼 조현우(27·대구)가 뒤에서 막았다. 2패를 안고 그라운드에 나선 한국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스웨덴과의 1차전에 103㎞, 멕시코전에선 99㎞를 뛰었지만 독일과의 3차전에선 무려 117.64㎞를 뛰었다.
한국, 1위 독일 꺾은 카잔대첩 #손, 하프라인~골문 7초 달려 득점 #“죽어라 뛰었다” 차기 주장 합격점 #조, 위기마다 선방 경기 MVP 뽑혀 #영국 축구팬들 “EPL에 영입해야” #두 영웅 병역 혜택 위해 AG 발탁론
손흥민은 1-0으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 쐐기 골을 터트렸다. 미드필더 주세종(아산)이 후방에서 길게 넘겨준 볼을 전력 질주해 받은 뒤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가 공격에 가담하느라 텅 비어 있던 골대 안쪽에 밀어 넣었다. 하프라인부터 문전 근처까지 50m 거리를 약 7초 만에 주파했다. 손흥민은 “처음엔 공이 라인 바깥으로 나가는 줄 알았는데 일단 죽어라 뛰었다”고 말했다. 이날 10.383㎞를 뛴 손흥민은 부상으로 결장한 기성용(스완지시티)을 대신해 주장 완장도 찼다. 한국은 1승2패 조 3위에 그쳐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손흥민은 ‘차기 주장’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손흥민은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눈물은 함께 뛴 동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 응원해 주신 국민을 향한 감사의 의미였다”고 말했다.
최후방에서는 조현우가 든든히 골문을 지켰다. 독일은 무려 26개의 슈팅을 난사했지만 조현우를 뚫지 못했다. 조현우는 독일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러시아 월드컵 개막 전까지 조현우는 무명에 가까웠다. 2013년 대구에 입단해 6년간 프로축구 무대에서 뛰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015년 11월 대표팀에 처음 뽑혔지만 A매치 데뷔전(2017년 11월 14일 세르비아전)을 치르기까지 2년을 기다려야 했다.
조현우가 매 경기 선방쇼를 펼치면서 해외에서도 ‘조현우 열풍’이 불었다. 프리미어리그 강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팬들은 “조현우를 당장 영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현우는 “동료 선수들이 앞에서 몸을 던져 막아주니 나도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며 “온 국민이 함께 막은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대 중반의 두 선수에겐 ‘병역 의무’가 남아 있다. 1992년생으로 만 26세인 손흥민은 군에 입대하면 당분간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한다. 군 프로팀인 상무 또는 경찰청에서 선수 이력을 이어가려면 28세 이전까지 입대해야 한다. 27세인 조현우는 연말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복무 기간 아내 이희영(29)씨, 지난해 태어난 딸 하린(2)양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 일부 축구 팬은 “오는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손흥민과 조현우를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카잔=송지훈·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